요즘 강남 스타일 노래가 미국 빌보드 챠트 1위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노래 가사 가운데 강남이라는 단어는 소수의 특권계층을 대변하는 의미가 크게 부각되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강남은 부와 명예, 그리고 현대인들의 꿈을 실현하는 곳의 대명사이다. 예부터 부르는 노래에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 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오려나?”라는 가사가 말해주듯 강남은 먼 미래에 보이지 않는 꿈과 같은 말이다.
미국식으로 구태여 설명하자면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강남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강남에서 사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현실이 어떠하든 간에 강남이라고 하는 단어가 들어갔을 때 받는 느낌이 다르다. 말하는 사람의 직장이 강남, 집이 강남, 부모가 강남, 자식이 강남, 학교가 강남, 친구가 강남 있다고 하면 괜히 무엇인가 특별한 것에 소속되어 있는 소속의 안정감에 자긍심(?)을 갖게 되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약간이라도 은근히 부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강남이라는 단어에 스타일이라는 말까지 붙었으니 입은 치마에 분홍 꽃무늬가 새겨있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다홍치마). 강남 스타일은 곧 강남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문화를 말한다. 물론 이 가사가 강남을 선호하거나 강남을 옹호하는 노래는 분명 아니다.
만일 그렇게 지엽적인 노래였다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노래가 갖고 있는 자극적인 리듬과 해학적인 춤, 그리고 거리에 걸맞은 가사가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숨어 있는 응어리를 터뜨리는 기폭제가 되었을 것이다. 강남 스타일은 어떤 것인가?
강남 스타일로 사는 것은 모든 것들을 다 겸비한 완벽한 스타일을 말한다. 낮과 밤, 열정과 함성, 감성과 감각, 육체의 건강와 정신의 풍요, 인간됨과 정숙함, 평범함과 특별함, 관대함과 까다로움, 일과 휴식의 균형감각을 다 누리며 살고 있어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부러워할 정도의 삶을 누리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세상에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공부를 잘하는 여자가 예쁘고, 키도 큰데 운동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데 글도 잘 쓰고, 노래도 잘하는데 요리도 잘하고, 그리고 돈도 잘 버는데 돈도 잘 쓰는 사통오달, 팔방미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사실 그런 강남 스타일대로 사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강남 스타일은 또 하나의 삶의 부담스런 숙제 하나를 또 갖게 되고 말았다. 모두가 강남 스타일의 인생을 살고 싶은 환상의 풍선을 하늘로 띄우게 된 것이다.
강남과 늘 비교되는 말이 있다면 강북이다. 원래 강북은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러하다. 정치의 중심, 역사의 중심, 그리고 문화의 중심은 역시 강북이다. 강북을 빼어놓고 한국을 말하는 것은 백악관을 빼고 미국을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강남과 강북이 서로 대조를 이루는 것은 격차나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독특성 때문이다.
강북은 서울이지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강남이 새롭게 개발된 신도시이기에 정리가 된 반면에 상대적으로 강북이 여러 시각적인 면에서 낙후된 모습을 군데군데 보게 된다. 그렇지만 사람 사는 냄새는 강북이 더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백화점과 재래시장, 그리고 전통과 개혁, 구세대와 신세대가 함께 섞여 사는 북새통이 강북이다. 강북이라 하지만 강북 나름대로 빈부의 격차가 있는 곳이고, 서울 본토박이들과 이북 피난민들, 그리고 지방에서 올라와 정착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가 많이 다르면서도 서울 하늘 아래서 저마다의 꿈을 이루고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마치 코리안 디아스포라(한인 이민자)들이 풍요의 나라 미국에서 성실하게 사는 모습처럼 말이다. 미국에서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일을 만나게 된다. 특히 신분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언어, 직장, 사업, 자녀 교육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시원하게 풀리는 것이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늘 근심, 걱정, 염려, 불안, 긴장, 초조로 인해서 얼굴이 굳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일수록 발게 웃도록 노력해야 한다.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치 수용소에 있었던 정신과 의사 빅토르 프랑클 박사는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몸이 튼튼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미래에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 곧 고통 에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로마서12:12). 우리의 삶에 설령 American Dream이 아직 눈앞에 있지 않아서 강남 스타일이 구겼다고 하지 말고, 아직 다가올 그 이루어질 꿈을 기다리며 강북 스마일(Smile)로 살아가는 행복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노래는 강남 스타일을 부르고, 행복은 강북 스마일로 불러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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