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이 주 인공으로 나오는 ‘버킷 리스트’ 라는 영화가 있다. 불치병에 걸 린 두 노인이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 을 모두 해보기로 약속하고 함 께 세계 여행을 떠난다‘. 버킷 위 에 올라 목을 매달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이라는 의 미에서 ‘버킷 리스트’라는 이름 이 붙었다.
이들이 적은 ‘버킷 리스트’에 는 스카이다이빙, 카 레이스, 문 신하기, ‘가장 아름다운 여성과 키스하기’ ,‘ 정말 웅장한 것 보 기’ 등등이 적혀 있는데 정말 이 들은 죽기 전에 그 대부분을 실 천하고 눈을 감는다. 이 영화 덕 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죽기 전 에 해야 할 일 몇 가지’‘ 죽기 전 에 가 봐야 할 곳 몇 군데’ 식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리스트는 사람마다 다르겠 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이라 면 죽기 전에 해보라고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맑은 가을 날 아스펜 숲 걸어 보기’가 그것이 다. 사시나무과에 속하는 아스펜 은 9월이 되면 노랗게 물들다 9 월 말에서 10월 초로 접어들면 진하디 진한 황금빛으로 변한다.
아침이나 저녁 무렵 노란 햇살 을 받으며 수천, 수억 개의 아스 펜 잎이 춤추는 장면은 장관이 다. 바람이 불면 아스펜은 ‘사시 나무 떨 듯 떨며’ 맑은 소리를 내 며 황금 동전의 눈보라를 선사하 기도 한다. 동방 정교가 주류인 슬라브 문화권에서는 예수를 배 반한 유다가 이 나무에 목을 매 죽었기 때문에 나무가 겁에 질 려 이처럼 떤다고 한다. 악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는 이 나무로 창을 만들면 뱀파이어를 죽일 수 있다는 전설도 있다. 인디언들 은 이 나무껍질을 소염제와 진통 제로 쓰기도 했다.
아스펜은 특이한 나무다. 개성 이 강해 물드는 시기가 제 각각 이다. 같은 동네에서도 앞산은 노 랗게 단풍이 졌는데 뒷산은 아직 도 파랗고 옆 산은 아예 잎이 다 떨어진 곳도 있다. 같은 동네가 아니라, 같은 산언덕, 심지어는 같 은 나무 안에서도 파랑과 노랑이 제멋대로 섞여 있다. 수명도 100 년 남짓으로 수 천 년씩 사는 다 른 나무에 비하면 짧은 편이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은 실상과 는 조금 다르다. 지상에서는 따 로따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땅 밑 뿌리는 서로 얽혀 있다. 한 아스 펜 군락지에 자라고 있는 아스 펜 나무는 알고 보면 한 생명체 다.‘ 다양성에서 하나로’ (E Pluribus Unum)를 모토로 내건 미국 의 이념과도 맞는다.
산불이 나 다른 나무들이 다 타죽어도 아스펜은 끄떡없다. 뿌 리만 살아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솟아나기 때문이다. 다른 나무 그늘 밑에서는 자라지 못하는 아 스펜에게 산불은 오히려 고마운 존재다. 이처럼 끈질긴 생명력 덕 에 아스펜의 실질 수명은 몹시 길다. 유타에 있는‘ 판도’라는 한 아스펜 자생지는 8만 년 동안 존 재해 오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 다. 지구상에 이보다 오래 사는 생명체는 없다.
중가주 비숍에도 아스펜 숲이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보려면 콜 로라도로 가야 한다. 비숍과 콜 로라도의 아스펜 규모를 비교하 자면 새우와 고래 정도 될 것이 다. 콜로라도 전역에 널려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아스펜이 많이 자라 동네 이름을‘ 아스펜’ 이라 지은 아스펜이야말로 아스 펜의 성지다.
한 때 은광촌으로 번성했다 폐 허가 됐던 이곳은 70년대 존 덴 버 등 가수가 모여 살면서 반문 화 중심지로 떴으며 그 후 스키 리조트로 부활하면서 지금은 매 매 주택의 중간가가 420만 달러 를 웃돌 정도로 미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이다. 아스펜의 아름 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이곳에 집 을 살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다.
아스펜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는 9월 말에서 10월초로 매 우 짧다.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 내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제각 각인 것 같지만 뿌리로 서로 연 결돼 하나이고, 약한듯 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아스펜은 어찌 보면 생명과 세계의 훌륭 한 메타포다. 올해가 아니라면 죽 기 전에 한 번은, 아스펜 숲이 선 사하는 빛과 소리의 향연을 감 상해 보자.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