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운동에 소질이 없다. 테니스나 탁구는 백핸드가 안 되고 수영은 도대체 물에 떠 있을 수가 없다. 골프는 공이 거의 대부분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간다. 한국에서 고입 체력장 시험에서도 2점을 손해 보았다. 그래도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 고등학교 때 동네 친구들과 축구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옆 동네 팀이나 동네 형들 팀과 빵 사내기 시합에선 곧잘 이겼다. 물론 모두 날렵한 친구들 덕이었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1974년에 버지니아주 알랙산드리아 시로 이민을 왔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는 영어 때문에 10학년부터 다시 시작했다. 당시에 알렉산드리아 시에는 9학년과 10학년만 다니는 주니어 고등학교가 있었다. 그 학교에 다니다가 친구로부터 동네 축구팀 가입을 권유 받았다. 당시만 해도 이 곳 버지니아주에는 축구가 그다지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그러기에 동네 축구팀의 실력이라곤 정말 형편없었다. 내가 팀에서 두각을 나타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2학기에 들어 내가 다니던 주니어 고등학교에 처음으로 축구팀이 조직되었다. 동네 축구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는 나의 명성(?)을 들은 코치가 나보고 학교 축구팀에 가입하라고 적극 권유했다. 그러나 사실 그 코치는 축구라곤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다. 마땅한 사람이 없어 그냥 레슬링 코치에게 팀을 맡겨 버린 것이다. 그러니 팀은 구성됐으나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느닷없이 코치가 나에게 선수 연습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덕분에 생전 해본적 없는 축구 코칭을 하게 되었다. 축구를 가르칠 실력도 안 되었지만 그 보다 영어가 제대로 안되어 통솔이 어려웠다. 지금은 그저 팀 멤버들과 헐떡거리며 운동장을 뛰어 돌던 생각만 난다.
연습기간이 지나고 첫 시합에서였다. 내가 센터포워드 자리를 맡았으니 팀의 전력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반이 다 끝날 때 쯤 상대팀 선수 하나와 공을 동시에 차다가 발목을 삐긋 했다. 고통을 호소하자 선수 교체를 해 주었는데 후반이 되어도 발목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뛸 수가 없었다. 시즌이 다 지나가도록 다친 발목이 낫지 않아 결국 그 것으로 나의 축구선수로 커리어는 끝나고 말았다.
그런 내가 다시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아들 녀석들을 키우면서이다. 애들이 동네 축구팀에 가입하면서 주 중에 두 번씩 연습장에 데려다주고 주말이면 시합에 가서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축구에 대한 열정에 다시 빠져 들게 되었던 것이다. 두 애들 모두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고등학교까지 거의 매년 봄, 가을로 축구 시즌이 있었으니 줄잡아 15년 이상을 일 년이면 절반은 축구를 생각하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둘째가 초등학교 4학년 봄 축구시즌이 막 시작했을 때였다. 둘째를 연습장에 데려다 주고 좀 구경을 하려 했는데 코치가 지각을 했다. 그래서 부모들이 그냥 대충 연습을 시키고 있었는데 부모들 모두 축구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한 듯 싶었다. 나도 좀 나가 거들어야 되겠다고 구두를 신은 채로 운동장에 뛰어 들어가 애들과 공을 조금씩 같이 차고 던져 주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드디어 도착한 코치는 훼어팩스 카운티에서 검사로 일하는 젊은 아버지였다. 그런데 이 코치 또한 본인이 원해서 코치가 된 것이 아니었다. 코칭은 물론 축구 자체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모습도 나의 주니어 고등학교 때 축구코치였던 레슬링 코치와 비슷했다.
결국은 자제할 줄 모르는 내가 나서서 혹시 도움이 필요 하느냐고 물어 보았고 코치의 감사인사를 제대로 다 듣기도 전에 운동장에 다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시즌 내내 서류상으로는 보조코치였지만 실제로는 연습과 시합에서 코치의 역할을 수행했다. 다행히 팀이 우승은 못했으나 훌륭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칠 수 있었다. 유감스럽다면 내가 코치 역을 맡았기에 다른 부모들로부터 편파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일부러라도 내 아이에게 좀 더 엄격히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둘째는 가끔 섭섭하게 느끼는 듯 했다. 그래도 아빠가 팀의 코치라는 것을 둘째는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운동을 못하는 내가 두 번씩이나 이렇게 축구코치 역할을 했다는 게 나도 믿어지지 않지만 나의 삶 가운데에서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아 있다. 요즈음도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어린 애들을 보면 축구장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혹시 어디 보조코치로 써 줄 팀을 한번 찾아 볼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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