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는 사랑이 아닐까. 흔히 목숨이 가장 귀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랑 앞에선 그 목숨도 제2의 가치로 떨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으로 인해, 혹은 사랑 때문에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랑은 삶과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
희랍철학에선 사랑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신적인(헌신)사랑 아가페(agape). 정신적인사랑 필리아(phila). 친구간의사랑(우정) 스토르지(storge). 남녀 간 육체적사랑 에로스(eros)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유희적사랑 로두스(ludus)와 소유적사랑 마니아(mania) 그리고 실용적사랑 프라그마(pragma)를 더하여 7가지 등으로 분류한다.
여기에 부모의 사랑은 빠져 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다른 동물의 어미에게서도 나타난다. 생명을 낳아 기르는 모든 종(種)에 존재해 있는 보편적 사랑이다. 흔히 부모의 사랑을 신적인 사랑인 아가페에 견준다. 예외는 있지만 보편적으로 사람과 그 어떤 동물도 자기가 낳은 새끼를 헌신적으로 돌보고 사랑하지 않는 존재는 없으니 그렇다.
아가페 사랑은 헌신적인 사랑이다. 희생적인 사랑이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랑이다. 받지 않고 주기만하는 사랑이다. 조건이 없는 사랑이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는 사랑이다. 그러니 신적사랑이라 한다. 사람으로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 보편적 존재는 부모밖에는 없을 것이다. 곧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아가페 사랑이다.
몇 일전 사랑하는 딸을 잃기 직전 살려 낸 부모가 있다. 부모와 주위의 아가페 사랑이 28세 난 그녀(그레이스)를 살려냈다. 병원과 법원을 통해 존엄사(안락사) 될 뻔 했던 그녀는 부모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간청으로 법원의 판결을 보류시켜 안락사를 면했다. 본인의사가 안락사를 원했다고 하지만 부모와 친지도 모르고 있었다 한다.
부모의 입장은 딸이 뇌종양으로 입원해 있는 동안 항암제와 진통제 등으로 판단능력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딸이 존엄사를 허락한 것은 적법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그레이스가 안락사 된다는 소식이 부모와 친지로부터 언론에 전송됐고 언론에서 뉴스로 보도되자 삽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살려야 한다는 추천에 싸인 했다.
10월1일이 그녀의 마지막 인공호흡기를 떼는 날이었다. 그러나 안락사는 보류됐다. 10월3일 그녀는 “살고 싶어요. 요양원에서 재활치료를 원합니다”라고 살려는 희망의 끈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퇴원하여 요양시설에서 치료할 것을 원하여 퇴원수속까지 신청했다고 한다. 부모의 사랑과 주위의 사랑이 천하보다 귀한 목숨 하나를 구해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라 한다. 그러나 사랑해야 할 대상을 싫어하는 것이 미움이라면 그것도 일말의 사랑이라는 설도 있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란다. 미워할 마음이 있으면 그건 조금이라도 생각하기에 그렇단다. 아예 머리와 가슴속에서 그 대상을 완전히 지워 없애버려 조금도 생각나기 전에는 무관심이라 표현할 수 없단다.
채소와 나무는 물을 먹고 자란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기는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라서 한 인간으로 세상에 나온다. 태어나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를 거치는 동안 부모의 사랑을 먹고 계속 자라며 세상에 적응해 간다. 장성한 사람을 보면 사랑을 먹고 자랐는지 무관심속에서 자랐는지를 보게 된다.
한 엄마가 있다. 그 딸이 사춘기 때 불량 아이들과 휩싸였다. 그래도 엄마는 그 딸을 사랑했다. 끝까지 믿어주고 밀어주었다. 딸은 장성했다. 한 때 잠깐, 곁길로 나갔던 그 딸이었지만 엄마의 사랑으로 그녀는 다시 돌아왔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그 엄마는 30이 넘은 그 딸을 볼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세상엔 많은 가치들이 있다. 그 중 가장 귀한 가치는 사랑이 아닐까. 법도 중요하다. 법이 있어야 질서가 유지된다. 그러나 법의 가치보다 더 귀한 것은 사랑의 가치가 아닐까. 사랑이, 그것도 헌신적인 아가페 적 사랑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세상엔 법이 필요 없을 것이니 그렇다. 부모의 사랑으로 다시 생명을 연장시킨 그레이스가 완전 회복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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