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 유소기, 주은래, 등소평 등 중공의 지도자들의 이름을 한자의 한국식 발음으로 부르던 시절에 성장한 필자에게는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등 중국식 발음에 약간 거부감을 느낀다. 이제 11월8일의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 부주석이 공산당 총서기직에 선출(?)됨으로써 등소평 집권 이후에 10년마다 한 번씩 있었던 중공 최고 권력의 가장 최근의 계승이 표면화될 것이다. 선출이라는 말에 의문부호를 붙인 것은 이미 공산당 최고 핵심인 정치국에서 정해진 것을 추인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내년 3월에 예정된 전국인민대표회의(국회?)에서 국가 주석(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의 얼굴이 될 것이다. 중국 권력의 핵심인 정치국 특히 현재로서는 9명인 정치국의 상임위원들이 정해온 대로 진행되니까 그야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마찬가지다.
다행히 하나의 중국이름은 기억하느라 애쓸 필요가 없어진 것은 보시라이가 공산당에서 축출 당했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혐의로 형사재판에 처해질 것이라는 발표가 11월8일의 당대표 대회 발표와 앞뒤를 다투어 미국 동부 시간으로 금요일 새벽에 나왔기 때문이다.
보시라이(63세)가 누구인가? 모택동 등과 함께 중국 공산 혁명의 8대 원로 중 하나였던 보이보 전 부총리의 아들이자 금년 3월까지만 하더라도 충칭시 당서기로 이번 지도층의 출현 때에는 중앙당의 정치국원에서 상무 정치국원으로 승차할 것으로 예견되던 최고위층에 속했던 사람이다. 중국 문화 혁명(1968-78)의 대혼란 시기에는 그의 부친도 숙청되어 와신상담하던 시절이라 그도 공장 노동자로 고생했었지만 등소평의 집권 이후에 빛을 보기 시작했다. 불과 35세의 나이에 다롄시 부시장이 된다. 그 후 랴오닝성 성장을 거쳐 2004년에는 중앙 정부의 상무부장(장관)이 되었다가 정치국원으로 승진하자 본인은 경제부총리 자리를 바랐지만 충칭 서기로 임명되었단다.
말이 시이지 충칭은 인구가 2,800여만의 자치시니까 웬만한 나라 규모이다. 나의 세대에게는 한국 임시정부가 소재했던 중경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좌우간 보시라이는 2007년에 충칭의 공산당 서기로 부임하면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충칭시 관내의 조직 범죄패들을 일소했을 뿐 아니라 관리들의 부정부패도 척결함으로써 시민들의 인기가 높아지니까 충칭 모델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전국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리고 홍색 캠페인이라는 운동을 전개하고 서민층을 위한 시 정책을 써서 시장 개방에 따른 빈부 격차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 문화 혁명 때의 홍위병 난동을 연상시키거나 대중 영합주의적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보시라이도 자기가 숙청한 탐관오리들과 엇비슷했던 모양이다. 그의 아들이 런던 경제대학을 거쳐 하버드 대학원에 유학한 것 자체도 중국 고위층의 공식 급료로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그가 끌고 다니던 고급 스포츠카만 보아도 권력의 구린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역시 혁명 제1세대의 딸인 보시라이의 부인 구카이라이의 행태는 더욱 불가사의다. 자신도 공산당 간부일터에 닐 헤이우드란 영국인과 합작투자는 웬 말인가? 더군다나 동업자끼리의 언쟁 끝에 구카이라이가 헤이우드를 작년 11월에 독살했다는 데야 비즈니스 관계 이상까지 연상할 수 있지만 금년 1월말 보시라이의 오른팔 같은 충칭시 공안경찰국장이 그 사건을 보고하자 보시라이는 왕리쥔 공안국장의 뺨을 때렸을 뿐 아니라 그를 해임시키기에 이르렀다.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으로 달려가 망명을 신청하게 되자 영사관 앞에서 보시라이 휘하의 무장 세력과 중앙 정부 군대와의 충돌마저 가능했던 위기 끝에 왕리쥔이 밖으로 나와 중앙정부에 모든 것을 이실직고하게 된다. 따라서 3월에는 보시라이가 충칭시 당서기직에서, 4월에는 정치국 국원직에서 해임된 후 조사를 받아 왔던 것이다. 구카이라이는 재판 끝에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집행만은 유예되어 장기수 신세가 된 판에 남편도 앞으로 있을 재판에서 20년형까지 받을 수 있다니까 집안이 풍비박산된 셈이다.
보시라이는 혁명 제1세대의 후손들인 태자당의 선두주자였기에 권력 핵심에 있는 다른 파들 즉 상하이방 그리고 공청단파 등이 일단 부상된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정치국 상임위원을 9명에서 7명으로 줄인다는 것도 그 점을 예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명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나 정치세력이라는 게 없고 보면 중국의 차기 지도자들 중 자기가 보시라이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하여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단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밖에도 빈부의 격차,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도시와 농촌의 격차, 티베트와 기타 소수민족 지역의 자치요구, 그리고 인터넷 세상의 특별한 도전 등 중국 핵심 권력자들이 머리가 아플 이유는 한 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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