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Vegetable Roots Discourse / 채근담
Those dwelling in the house of virtue may be lonely at times.
But those who prosper by the fawning upon the powerful are
sadly lonely for ten thousand ages.
도덕에 머물며 지키고 사는 사람은 한때에 적막할 뿐이나,
권세에 의지하고 아첨하는 사람은 만고에 영원토록 처량하다.
棲守道德者 寂寞一時 依阿權勢者 凄凉萬古
서수도덕자 적막일시 의아권세자 처량만고
추기(秋氣) 완연한 9월 어느 주말 오후, 동네 언덕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며 환초도인(還初道人) 홍자성의 채근담을 영문으로 읽습니다.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성인의 말씀에 근거한 책 제목 채근담(菜根譚), 이 세 글자가
이미 모든 걸 다 말해주고 있습니다.
채근담의 영문 제목 “Vegetable Roots Discourse.” 원제의 어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직역입니다. ‘채소 뿌리 담론’이라 그대로 번역하니
과연 무슨 내용의 책인지 당혹스럽습니다. 세간의 부귀영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를 하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만 해도 만족하지 않은가"라는 군자의 속내가 확연치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지혜의 뿌리” [The Roots of Wisdom]또는 “단순한
삶에 관한 담론” [Discourses on Simple Life]라 풀어 제목을 붙이기도
했더군요.
교복입고 학교 다니던 시절, 그 때도 가을 어느 날, 교정 한 구석 천고마비
독서의 계절 속에 앉아 읽던 채근담의 첫 구절이 바로 오늘의 지문입니다.
도를 깨달아 덕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은 잠시 외로울 수 있다. 나 홀로
양심적으로 살다보면 외톨이 신세가 되기 쉬운게 이 세상이다. 나 홀로
도덕군자로 살다보면 여기저기 양상군자들을 만나 봉변 당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도덕에 머물며 도덕을 지키고 사는 게 답이라 가르치는 채근담
첫 구절. 어릴 적이나 또 훌쩍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이나 이 말의 여운은
늘 한결같이 따끔합니다.
잠시 외롭더라도 도덕과 양심을 따르라. 만약 내 안의 성령 소리 양심을
위배하고, 내 안의 하느님 소리 도와 덕을 저버린다면 잠시 적막은
처량만고가 될 것이다. 이렇게 단호하게 자르고 있습니다. 권력과 세도에
아부하고, 곡학아세(曲學阿世)하며, 일신의 영달을 위해 도덕과 양심을
저버린다면 만고에 처량한 신세를 면치 못할 터! 凄凉萬古(처량만고)라!
Sadly lonely for ten thousand ages! 참으로 처량한 신세를 면치 못할 터!
Those dwelling in the house of virtue may be lonely at times.
But those who prosper by the fawning upon the powerful are
sadly lonely for ten thousand ages.
도덕(道德)에 머물며 지키고 사는 사람은 한때에 적막할 뿐이나,
권세에 의지하고 아첨하는 사람은 만고에 영원토록 처량하다.
棲守道德者 寂寞一時 依阿權勢者 凄凉萬古
서수도덕자 적막일시 의아권세자 처량만고
도와 덕을 지키며 산다는 뜻을 영어로 푼 내용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덕의 집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가끔 외로울 수 있다"고 번역했군요.
’the house of virtue’, 좋은 표현입니다. 내 안에 있는 양심, 좋은 마음,
결코 타락할 수 없는 본성(本性)이자 불성(佛性)인 자리, 그걸 ‘덕(德)의
집’이라 옮기고 있습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란 걸 새삼 느끼게 하는
영문 채근담입니다.
홍자성의 채근담이 말하는 ‘의아권세자(依阿權勢者)’는 그 뜻이 좀 더
큰 내용이 아닐까 곱씹어봅니다. 물론 권력을 쥐고 있는 세도가들에게
아첨하는 인간들을 지칭하는 건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늘 양심의 소리로
속삭이는 참나를 무시하고 탐욕과 아집 그리고 무지에 찌들어 졸라대는
에고에게 은근히 살살거리며 아부한다는 뜻 또한 들어 있는 건 아닐까요?
알게 모르게 도심(道心)보단 인심(人心)을 따르는 게 대부분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어느 선지식(善知識) 말씀대로 양심의 힘이 적어도 51%가
되지 않는 한, 우린 늘 에고가 시키는대로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항상
죄짓고 사는 꼴이 되고 맙니다. 문제는, 죄 짓는 것조차 모르고 죄지을
정도로 사람의 영적 지능이 퇴락해 간다는 참담한 현실입니다. 알고 보면
모르고 짓는 죄가 진짜 무서운 죄인데 말입니다.
차라리 한때의 적막함을 겪을지언정 절대로 만고의 처량함을 취하지
않는다는 사람, 그런 분을 채근담은 ‘깨달은 이(達人, 달인)’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사물 밖의 사물을 보고 몸 뒤의 몸을 생각하는 사람, 바로
그런 분이 진정한 사람, 진인(眞人)입니다. 앞산에 올라 영문 채근담을
읽으며 바로 이 첫 문구를 조국 대한민국 하늘 높이 띄워 보냅니다. 이제
바야흐로 본격화되는 2012년 대선에 앞장선 모든 이들, 바로 그 분들이
한번쯤 경청해보시란 뜻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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