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전에서 TV토론의 실제효과는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1960년 첫 도입되면서 자신감 넘치는 훤칠한 외모의 존 F. 케네디와 안절부절 진땀 흘리는 리처드 닉슨의 대비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미 전국에 케네디 열풍을 몰고 온 이후 TV토론은 선거 판세를 흔들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간주되어 왔다. 여론의 61%도 토론이 “중요하다”고 답한다.
정치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좀 다르다. 조지타운대학 존 사이즈교수가 최근 발표한 데이터 분석에 의하면 역사에 기록된 어떤 토론의 순간도 지지율과 선거결과를 기본적으로 바꾸진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976년 “동유럽은 소련의 지배에 있지 않다”며 국제정세 무지를 드러낸 제럴드 포드를 해박한 지식으로 압도한 지미 카터나, 4년 후 그 카터가 공격을 할 때마다 여유있게 웃으며 “또 시비를 거는군요”라고 상대를 편협한 사람으로 몰아간 로널드 레이건은 토론 이전에 이미 승기를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대가 연거푸 한숨을 내쉴 정도로 토론에 어설퍼 보였던 조지 부시는 당선되었고, TV토론 사상 최고의 강펀치를 날렸던 부통령 후보 로이드 벤슨은 낙선했다.
금년 공화당 대선 후보 미트 롬니에겐, 그러나 토론 영향력의 진위를 따질 여유가 없다. 대선 캠페인이 막바지에 접어든 중대한 시기에 ‘47% 동영상’에서 경제 호전, 경합주 지지율 급등에 이르기까지 잇단 악재로 사면초가에 빠진 롬니에게 “마지막, 최선의 반전 기회”라고 대다수 전문가들이 꼽아주는 게 바로 TV토론이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이나 국제위기 등 돌발변수가 없다면, 선거전 마지막 챕터에서 판세를 흔들 수 있는 요소는 크게 3가지라고 프린스턴 대학의 줄리언 젤리저교수는 설명한다 : TV광고 전쟁과 자원봉사자들의 발로 뛰는 선거운동, 그리고 TV토론이다. 그중에서도 토론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부터 선거일까지 후보 토론만큼 전국, 아니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디어에 의해 걸러지지 않은 후보의 모습과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또 이처럼 대규모 청중을 모아줄 행사도 없다. 케네디 대 닉슨 때는 6,600만명이, 레이건 대 카터 때는 8,000만명이 시청했으며 점차 시청률이 하락하긴 했지만 금년에도 약 5,000만명이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당장 각자의 점수가 나오고 가시적으로 승패가 갈리는 것이 토론이어서 “경쟁 좋아하고 승자 사랑하는” 미국인들의 기질과 궁합도 잘 맞는다.
금년 대선후보 토론은 다음 주인 10월3일 콜로라도 덴버에서의 첫 토론을 시작으로 16일과 22일, 3차례에 걸쳐 열린다. 첫 번째엔 경제·일자리·정부역할·헬스케어 등 국내문제, 두 번째는 부동층 유권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타운홀 미팅형식으로, 마지막 토론에선 외교정책을 다룰 예정이다.
이번 토론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 양진영의 기대치는 완연히 다르다.
오바마 진영에선 획기적 계기로 기대하지 않는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대통령의 핵심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전하며 실망한 유권자의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새로운 기회로 삼으면 된다. 그래서일까, 참모들은 살인적인 대통령의 스케줄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없다고 ‘엄살’을 떨며 ‘웅변가’ 오바마의 토론 능력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려 애쓰는 모습이다.
하긴 오바마는 정곡을 찌르는 간결한 답변에 약한 것으로 소문 나있다. 모든 질문에 변호사 혹은 교수처럼 접근하여 전문가다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 일쑤다. 2010년 타운홀 미팅에선 한 유권자의 질문에 17분에 걸쳐 ‘강의’한 기록도 있다.
롬니 진영에선 첫 토론에 거는 기대를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지난 6월부터 역대 어느 후보보다 열심히 토론을 준비해 왔다. 최근엔 48시간 동안 5번이나 모의 토론을 강행한 적도 있었다. 이젠 생사를 걸어야 할 마지막 희망이 되었으니 절박해지기도 했다.
CNN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9%가 오바마의 토론 승리를 점치고 있다지만 롬니가 승리할 근거도 만만치 않다. 우선 토론은 항상 도전자에게 유리하기 마련이다. 지난 6번 대선 중 빌 클린턴에 참패한 밥 도울만 제외하곤 5번이나 첫 후보 토론에서 도전자가 승리했었다. 거기에 롬니는 공화경선 동안 20회 후보 토론에서 16회나 승리를 거둔 경험이 아직 생생하다. 롬니 실력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치가 높지 않아 웬만하면 승리로 판정받을 수도 있다.
지금 롬니에게 필요한 것은 토론에서의 단순한 승리가 아니다. LA타임스가 지적한대로 최근 몇 주 경제에 대한 유권자의 태도가 달라졌다. 소비자 신뢰지수가 오르기 시작했고 미래 전망도 밝아지면서 두려움이 완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표밭의 변화는 실언으로 인한 잇단 악재보다 롬니에겐 훨씬 심각한 장애를 의미한다.
공화당에겐 다행이랄까, 여전히 경제가 불안하고 국가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의 비율은 아직 과반이 넘는다. 그러므로 롬니가 내주 토론을 통해 반드시 얻어내야 할 것은 자신을 ‘경제 해결사’로 믿어주는 유권자들의 신뢰다. “오바마 보다 더 대통령다운 태도로 오바마를 압도하고” 자신의 경제정책은 “구체적으로, 쉽게” 설명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롬니 아니라 누구에게도 전혀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러나 선거까지는 40일이나 남았다. 많은 변수가 생길 수 있는 기간이고 반전이 불가능하지 않은 시간이다. 드라마틱한 반전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는 토론을 시청하겠다는 미국인은 무려 83%에 달한다. 다음 주 수요일 LA시간으로 오후 6시부터 시작된다. 롬니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 이번 토론을 지켜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책임 있는 유권자가 되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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