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 바탕의 오성홍기가 숲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 모택동 초상화가 긴 열을 지었다. 지난 주 중국 전역을 뒤엎다 시피 했던 반일(反日)시위광경이다.
모택동은 한마디로 신(神)이었다. 그 모택동의 초상화를 들고 날뛰던 홍위병들. 60년대 문화 혁명기. 광기가 지배하던 시대,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었다.
중국의 국부다. 그런 그의 초상화는 죽은 지 36년이 되지만 여전히 천안문광장에 걸려 있다. 모택동은 그러나 오늘날 다른 것의 표상이 되어있다. 중국공산당에 대한 불만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모 주석이 살아 있었더라면 벌써 일본을 공격했을 것이다. 현재의 지도자들은 줏대가 없다.” 85개 도시에서 반일 시위가 열린 날 AP통신이 한 시위참가자를 인용해 전한 현지 표정이다.
전 세계가 주시했다. 외교적 경고에서 대대적 반일시위, 강력한 경제제재 시사, 감시선과 어선 동원을 통한 해상시위, 그리고 인민해방군 5개 관구에 3급 전투태세 발령 등 실질적인 군사행동 개시.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에 따라 나온 중국의 잇단 대응조치다. 그 숨 가쁜 순간순간들을 전 세계는 지켜보아 온 것이다.
중국은 왜 그토록 ‘군사대응’도 불사할 정도로 강경대응인가. 열흘이 지난 현재 다소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렇지만 계속해 던져지고 있는 질문이다. “국내를 의식한 강경책이다.” 대다수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경제는 점차 나빠지고 있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고 부패상황은 한계에 이르렀다. 당 지도부 개편은 임박했으나 방향성을 잃고 있다. 이 같은 내부 불안 요소를 희석시키기 위해 반일 드라이브의 강경노선을 선택해 국면전환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나오는 일부의 전망은 머지않아 평온을 되찾게 된다는 것이다. 다소 차질은 생겼지만 제 18차 중국공산당 당대화가 소집돼 권력승계가 마무리되어지면서 긴장국면은 누그러진다는 거다.
중국과 일본은 최대 교역국이다. 때문에 더 이상의 긴장국면을 원치 않고 있다는 것이 낙관론의 또 다른 이유다. 과연 그럴까.
“일본 정부가 셴카쿠 국유화를 선언하자 중국은 센카쿠에 대해 영해 기선을 선포했다. 이 영해기선 선포는 장기적으로 심각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포린 폴리시지의 지적이다. 중국이 센카쿠에 영해 기선을 선언했다는 것은 영해로 진입하는 일본선박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팽배하고 있는 중화민족주의는 언제든지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이다. 중국 공산당은 반일(反日)을 통치이데올로기로 이용해 왔다. 중국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애국교육은 바로 반일주의 주입교육으로, 반일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한 중화민족주의는 그 자체가 괴물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그 가능성의 한 예가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다. 중국인 과반수는 수 년 내에 일본과의 군사적 충돌을 기정사실인 양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수천, 수만의 중국인들이 거리로 뛰쳐나갔다 거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분쟁은 일본제국주의가 남긴 유산이므로. 그러나 일본인에게 폭행을 가하고, 일본 상가를 불 지르는 행위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더구나 일본에 대해 핵 공격을 주장하는 언론의 논설은 20세기 초 파시즘이 대두됐던 유럽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아시아타임스의 보도다. ‘현 정부가 너무 미온적이다. 일본에 대해 강공책을 도입하라’-. 그 공격에는 군부도 가담했다. 문제는 일본이 타깃처럼 보이지만 실제 공격 타깃은 후진타오를 정점으로 한 현 공산당 지도부라는 점이다.
모택동의 초상화가 동원된 것도 마찬가지다. 국가주권 수호에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그 모 주석을 배우라는 주장이다. 무슨 메시지인가. 일본이 아니다. 현 공산당 지도부가 그 공격의 타깃인 것이다.
‘군사행동 불사를 외치는 시위대의 슬로건, 강경으로만 달리고 있는 군부지도자들, 그 여론에 허둥대는 공산당 지도부’- 거기서 엿보이는 한 가지 가능성은 ‘파시즘의 중국’이 아닐까 하는 것이 아시아타임스가 내비친 우려다.
“셴카쿠열도를 둘러싼 갈등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이번에는 싱크탱크 스트랫포의 로버트 카플란의 경고다. 중국은 경제, 정치적 위기의 긴 터널에 빠져들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중국식으로 표현해 천하대란(天下大亂)의 시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국내적으로 불안정한 중국은 모험주의적 해외정책을 추진, 남쪽으로는 사우스 차이나 해역에서, 이스트 차이나해, 그리고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전 아시아 태평양지역에 자칫 먹구름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갈등. 이는 한국으로서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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