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상 최악의 불황이던 대공황이 왜 일어났느냐를 놓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바로 연방 준비 은행 때문이라는 학설이 요즘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여년에 걸친 미국 역사는 호황과 불황의 반복이었다. 1929년 주가 폭락과 함께 시작된 불황도 보통 불황처럼 자연스럽게 끝나고 호황이 찾아와야 정상이었다. 무엇이 이를 방해했으며 이 불황이 그전 불황과 달랐던 점은 무엇일까. 애나 슈워츠와 함께 ‘미국 통화사’(Monetary History of the US)라는 대작을 쓴 밀튼 프리드먼은 그 주범으로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를 지적한다. 불황을 막아야할 중앙은행이 잘못된 정책으로 불황을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FRB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1907년의 패닉’이었다. 월가의 일부 투기꾼이 유나이티드 카퍼 회사 주가를 조작하려다 실패하자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 예금주들이 돈을 빼기 시작했고 이 현상이 다른 은행으로 번지면서 뉴욕에서 3번째로 큰 투자회사인 니커바커 트러스트가 망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뉴욕 금융계가 마비될 형편에 빠지자 J P 모건을 비롯한 재력가들이 뒷돈을 대 겨우 투자가를 안심시켰다.
모건의 재빠른 행동으로 대형사고는 막았지만 더 이상 개인들의 노력으로 국가적인 금융위기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져 중앙은행을 만들기로 하고 1913년 ‘연방 준비은행법’ 제정돼 탄생한 것이 바로 연방 준비 은행이다.
FRB가 생기고 1920년~21년 사이 불황이 찾아오자 FRB는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 맡은바 소명을 다하려 했다. 그 결과 호황이 찾아왔으나 고삐 풀린 돈은 투기 자금으로 변해 월가로 몰려들었고 주가는 폭등했다. 이를 잡기 위해 FRB는 뒤늦게 돈줄을 죄기 시작했으나 이것이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며 불황이 찾아왔다.
곳곳에서 은행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는데도 FRB는 투기를 뿌리 뽑고 약한 은행은 아예 사라지는 게 낫다는 식으로 수수방관했다. 1921~28년 사이 61%가 증가했던 통화량은 1928~31년 사이 30%나 줄어들었다. 은행이 계속 문을 닫고 돈줄이 말라버리자 기업들도 줄줄이 망하기 시작했다. 프리드먼은 대공황의 핵심은 바로 이 통화량의 ‘대수축’Great Contraction)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이론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인물이 있다. 현 FRB 의장인 벤 버냉키다. 2002년 당시 FRB 이사이던 그는 프리드먼의 90회 생일 기념 연설에서 그야말로 필적할 상대가 없는 이 시대의 위대한 경제학자라고 치켜세우고 “맞습니다. 우리가 대공황의 주범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나 당신 덕분에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후 FRB 의장이 된 그는 그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대공황 급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돈 줄을 풀 수 있는 한 최대한 풀어왔다. 7,000억 달러의 불량자산 구제기금에다 국채 매입을 통한 1차, 2차의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를 통해 수 조 달러를 풀었다.
그 버냉키가 지난 주 다시 모기지 채권 구입을 통한 제3차 QE를 선언했다.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매달 400억 달러의 주택 담보 채권(Mortgage Backed Security)을 매입해 모기지 금리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그가 이같은 극약처방을 내린 것은 실업률이 무려 43개월째 8%를 웃도는 등 미국 경제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조치에 주가가 폭등하자 월가는 희색이 만면하지만 롬니 진영은 ‘노골적인 오바마 편들기’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의 돈 풀기는 단기적으로는 경기 부양에 도움을 주겠지만 장기적인 악영향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1929년 주가 폭락도 시작은 FRB가 경기 부양을 위해 20년대 돈을 풀면서 시작됐고 2000년대의 부동산 버블도 2000년 이후 하이텍 버블 붕괴로 인한 불황을 막가 위해 FRB가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 생겼다. 과연 이번 돈 풀기가 부작용 없이 경기를 살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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