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6일 대선까지는 아직 7주 이상 남았지만 투표는 이미 시작되었다. 지난주 노스캐롤라이나를 시작으로 32개주와 워싱턴 DC에서 조기투표(early voting)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선거일 전에 유권자들이 편리한 날을 택해 미리 투표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인데 직접 투표소에 가거나 우편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대선 때는 전체유권자의 33%가 조기투표를 했으며 금년엔 더 늘어 약 40%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측불허의 경합지역인 콜로라도에선 2008년 78%가 조기투표를 택했었다.
전통적으로 미 대선이 막바지로 접어들면 ‘10월의 충격(October Surprise)’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고조되었었다. 투표일을 눈앞에 둔 10월에 선거판을 뒤흔들 충격적인 뉴스가 터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이제 미 대선에선 ‘옥토버 서프라이즈’의 위력도, 수천만 달러를 쏟아 부을 10월의 융단폭격 광고효과도 예전 같지 못하다고 한다. 불꽃 튀는 대결이 기대되는 후보들의 TV공개토론 역시 표로 직결될 확률은 낮아지고 있다. 양당의 치열한 막바지 캠페인엔 아랑곳없이 유권자 10명 중 4명이 일찌감치 투표를 끝내기 때문이다.
이미 대다수 유권자들의 마음은 정해졌고 표심의 대세는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금년 대선 표밭의 성향을 시사주간지 내셔널 저널의 로널드 브라운스타인은 숫자로 계산하여 양 후보의 ‘승리공식’으로 정리했다 :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승리공식은 ‘80/40’이다. 소수계 표의 80%와 백인표의 40%를 얻는다면 재선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08년 오바마는 흑인, 라티노, 아시안 등을 모두 포함한 소수계 유권자 표의 80%와 백인표의 43%를 얻었었다.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의 도전 승리공식은 ‘61/74’다. 백인이 최소한 전체 투표자의 74%가 되고 그들 중 61%가 롬니를 찍어야 한다.
미 정치의 인종 양극화를 반영하는 ‘승리공식’이 말해주듯 오바마의 최대 난제는 백인, 그중에서도 근로계층 백인 유권자의 표심이다.
2008년에도 그랬다.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던 백인 근로계층 유권자 상당수는 본선에서 민주당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민주당에게 승리를 안겨준 것은 오바마가 새로 몰고 온 표밭, 젊은 층과 흑인-히스패닉-아시안 등 ‘무지개 연합’이었다.
4년 전 전체의 26%였던 소수계 투표자의 비율은 금년엔 29%로 증가할 전망이다. 그러나 반대로 분노한 백인유권자의 투표율이 확 오르고 오바마의 경제정책에 실망한 소수계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하락할 수도 있다.
근로계층은 원래 민주당 표밭이었다. 그런데 서민들을 위해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를 만들었고 지나칠 만큼 친 노조를 외치는 민주당이, 날이 갈수록 근로계층 민심 얻기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는 저학력 백인 유권자 그룹에선 롬니에게 무려 22% 포인트나 뒤지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낙태와 동성결혼 등 사회이슈에 대한 근로계층 백인들의 보수적 시각이나 오바마에 대한 인종적 거부감 때문일 수는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이들을 ‘당연한 우리 표밭’으로 여겨 온 민주당의 안일하고 소홀한 태도라고 USA투데이는 지적한다. 지난 수십년간 제조업 일자리를 잃고 세계화와 테크놀로지 파워에 휘둘리면서 추락을 거듭해온 이들을 배려하고 생활수준을 향상시켜줄 대응책을 적극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백인 근로계층의 정서를 이해하는 민주당 리더로 꼽혀온 빌 클린턴은 “고통당하는 근로계층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부유층이든, 빈곤층이든)의 무임승차”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1995년 리버럴의 반대와 실망을 무릅쓰고 웰페어 개혁안에 서명한 것이라고 USA투데이는 분석했다. 오바마의 정책이 이들의 정서를 포용하는 해답을 찾아낼 때 까지는 이들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레이건 민주당’으로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는 경고다.
롬니의 승리공식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경선 때부터 반이민 입장을 고수해온 롬니는 부시나 매케인과는 달리 전적으로 백인 유권자에 의존하고 있다. 백인표 61% 획득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혹 롬니가 ‘돈’과 ‘어려운 경제’를 무기삼아 운 좋게 61% 득표율을 거둔다면 사상 최고로 기록될 정도다. 게다가 백인의 투표점유율은 계속 하락세다. 1980년 90%에서 2008년엔 74%로 줄어들었다.
양 후보의 승리공식이 금년 대선결과와 들어맞을지 물론 아직은 예단하기 힘들다. 조기투표율이 점점 올라가긴 하지만 3번의 TV토론과 9월과 10월 실업률 발표에서 후보들의 말실수에 이르기까지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당장 이번 주 미 영사관 피습으로 대사가 사망한 리비아 사태가 대선 쟁점으로 얼마나 뜨겁게 부각될 지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각각 지지층의 숫자는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누가 승리하든 ‘승리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오바마에겐 재선된다 해도 백인들의 민심 얻기가, 롬니에겐 승리한다 해도 소수계 끌어안기가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을 것이라는 뜻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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