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는 내 하나 밖에 없는 사위다. 내 딸이 외동딸이라 사위도 한명이지만 딸은 엄마의 팔자를 닮는다는 말이 있어서인지 우리 딸도 나처럼 시집을 두번 갔다.
나는 어릴때 부터 친척 어른들이 모이면 ‘쟤는 팔자가 사나워 시집을 두번 가야 할것이라고 "늘 내 등에 대고 수근거리곤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도 모르게 아마 크면 시집을 두번 가야 할것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었다.
그 이유는 내가 호랑이 띠에다 정월 생일에 날짜도 11일에 태어나서 계집애가 1월 11이기 때문에 1자가 세번 겹쳐서 팔자가 세다는 것이 그들의 공론이었다.
나는 정말 그들의 말처럼 시집을 두번 갔지만 내 딸도 나처럼 그렇게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내 딸은 영리하기도 했지만 여섯살에 우리가 살던 작은 도시에서 미스 프린세스로 뽑혔고, 텍사스 주로 이사를 가서도 미스 텍사스에 뽑힐 만큼 어릴때 부터 누구나 다 부러워 하던 미인이었다.
그애가 처음 배운 한국 말이 아유!예뻐라!였다.한국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그애가 로스쿨을 나와 바 시험에도 단한번에 합격하고 나를 따라 한국행을 했던 것이 그애의 운명을 바꾸어 버린 계기가 될줄은 그때는 미쳐 누구도 몰랐다.
한 두어달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남아 있던 그애에게서 하루는 결혼을 하겠다고 전화가 왔다. 우리들은 강력히 말렸지만 결국 그애는 캐나다에서 왔다는 남자 애 하고 태국으로 날아가 결혼을 해버렸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하나 밖에 없는 딸의 결혼식에도 참석치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나는 그때 벌써 엄마의 직감으로 이 결혼이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삼년후 내 딸은 두살 배기 아기 한명을 데리고 이혼녀가 되어버렸다. 딸은 처음 일년간은 우리 집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애는 변호사로 일하게 되었고 나는 저절로 손녀 딸을 베이비 시터하는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이 덴빌이라는 동네는 좋은 동네지만 이혼녀가 살기에는 너무 답답한 곳이야"
딸은 그렇게 말하고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버렸다. 그후 딸 애는 어떤 큰 파티에 갔다가 지금의 스티브를 만나게 되었다. 빈 자리가 하나 밖에 없어서 그곳에 앉았는데 바로 옆 자리에 스티브가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그렇게 만난 것이 벌써 십년 전이다. 지금은 둘 사이에 두 아이가 있고 아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스티브는 늘 이렇게 말하곤 한다."나는 참 행운아예요. 아름다운 아내와 이렇게 이쁜 아이들이 있으니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구요"라고.
의외로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선남선녀들이 싱글이 많다. 직업도 변호사 아니면 의사,전문 금융인 같이 성공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왜 혼자 사는지 이유를 알수 없었다. 스티브도 내 딸을 만나기 전에는 소문난 플레이 보이였다는게 딸의 말이다.
스티브는 거의 일생을 밀 밸리라는 금문교 밖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이름 난 변호사였고, 엄마는 상류층 특유의 클라스가 있는 백인 여자였다.
일생을 정원사가 딸린 대저택에서 가정부며 네니까지 거느리고 살았지만 거만하지 않고 오히려 상냥한 노부인이었는데 삼년전 스티브의 결혼식도 못보고 저 세상 사람이 되어 버렸다.
우리들과 두번 크루스 여행을 갔는데 그때 가져온 신발만 열개가 넘어 나를 아연케 한 적이 있다. 늘 정장에 모자를 쓰고 긴 스카프를 늘어 뜨리고 다니는게 그녀의 스타일이었다.지금도 그녀의 촉촉한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스티브는 부잣집 도령 답게 마음이 부드럽고 착하다. 그에 비해 마커스(딸의X )는 어릴때 부터 고생을 해서인지 한번 싸우면 그 파란 눈에 독기를 담고 잘 풀지도 않는다고 했다.결정적으로 그애들이 헤어진 이유는 결국 더 이상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가끔 일년에 한두번 마커스는 지 딸인 사만타를 만나러 캐나다에서 이곳으로 온다. 우스운 것이 그가 오면 제일 반가워 뛰어 나가는 아이는 둘째인 데니다. 마치 십년을 못만난 지 친아버지를 만나는것 처럼 그애는 달려가서 냉큼 안기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웃어야하지 울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한번은 그가 토론토에서 사만타에게 전화를 했는데 마침 그곳에 있던 네살 짜리 대니가 받아서 무어라고 쫑알거리다가 옆에 있던 스티브를 준다. 멋도 모르고 전화를 받아든 스티브가 사만타의 성적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정말 이 미국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별종들인가 하고 감탄을 해야할지 콩가루 집안이라고 해야할지 몰라 내가 오히려 안절부절 했던 적이 있다.
한번 헤어지면 원수가 되어버리는 한국 사람들과 달리 이렇게 서로 친구 관계로 변하는 이 서양인들의 문화가 오히려 인간적인지도 모른다.
오늘 스티브의 오십번째 생일을 여는 스틴슨 비취는 아쉽게도 날씨가 안개가 끼고 추운것 같다. 손님만도 오십명을 초대한 파티라 아마 굉장한 파티가 될것 같다.
그 별장은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어서 전망이 일품이고 잘때는 파도소리가 또한 멋스러운 곳이다. 그는 김치와 구운갈비.만두를 유난히 좋아한다.
"제발 잘만 살아다오.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살아다오. 그러면 언제나 갈비며 김치며 만두를 해줄께. "앞으로 육십년 아니 구십년의 생일까지 내 딸 옆에서 그렇게 있어줘! 나는 허공에 대고 그렇게 간절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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