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주택 버블이 터지면서 시작된 이번 불황보다 더 심했던 불경기는 미국 역사상 딱 한 번 있었다. 주가 폭락과 함께 발생한 대공황이 그것이다. 대공황이 시작된 1929년부터 경기가 최악이던 1933년 사이 미국 내 2만4,000개의 은행 가운데 1만3,000개가 망했다. 주가는 90%가 폭락하고 GDP는 30%가 줄었으며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당시 전국 주택 가격의 변동을 알려주는 지수는 없었지만 이번 주택 붕괴를 예언했던 예일대의 로버트 실러 교수는 29~33년 사이 집값이 29% 떨어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920년부터 2차 대전이 시작된 1939년까지 맨해튼 주택 가격을 비교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공황 기간 이 곳 집값은 최고 67%까지 하락했다. 이 때는 실업수당도, 소셜 시큐리티도, 메디케어도, 푸드 스탬프도, 극빈자 의료보험도, 생계비 보조도 없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매우 우울한 세월을 보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집권하며 뉴딜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것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평가다. 33년 25%에서 36년 14%까지 떨어졌던 실업률은 37년 다시 19%로 올라섰다. 실업률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며 미국이 2차 대전에 본격 개입하면서부터다.
유휴 노동자들이 징집돼 전쟁터로 나가고 이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한 물자 수요가 늘면서 잉여 생산물 문제도 해결됐다. 막대한 군사 장비 생산으로 산업은 활기를 되찾고 경기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미국을 대공황에서 구한 것이 제2차 대전이란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쟁이 끝나고 군대 갔던 젊은이들이 돌아오면 대량실업 사태가 다시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으나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전 세계를 무대로 벌어진 전쟁으로 유럽과 일본, 소련이 초토화되는 바람에 물자 생산 능력을 가진 나라는 미국밖에 없었다. 미국은 전 세계 공장 노릇을 하며 부를 거둬들였고 오히려 일손이 모자라 쩔쩔맸다. 이런 상황은 서유럽과 일본이 경제력을 회복하고 오일 쇼크가 터지기 전인 70년대 초까지 계속됐다. 70년대는 경기가 나빴지만 인플레와 함께 집값은 계속 올랐고 80년대와 90년대는 레이건과 클린턴의 시장 친화 정책과 함께 경제가 성장하면서 역시 올랐다.
2000년 이후에는 하이텍 버블 붕괴로 인한 불황 장기화를 막기 위해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가 초저금리 정책을 펴자 투기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집값이 매년 두 자리 수로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렇게 수십년동안 집값이 오르자 사람들은 ‘미국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환상을 갖게 됐고 조작된 서류로 융자를 받아 값을 묻지 않고 마구 집을 사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2006년 피크를 기록한 미국 집값은 그 후 6년 동안 끊임없는 하락을 거듭했고 수많은 주택 소유주들을 파산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이 기간 미국 집값은 평균 35% 떨어졌고 10조 달러가 증발했다.
그러나 상승에도 끝이 있듯이 추락에도 한계가 있다. 지난 몇 개월간 나온 각종 지표는 드디어 주택 시장이 긴 불황의 터널을 빠져 나오기 시작했음을 알리고 있다. 지난 7월 매물로 나온 주택 평균 대기기간은 69일이었는데 이는 작년에 비해 30%가 줄어든 것이다. 대기 물량도 작년 9개월분에서 올해 6개월 반으로 감소했다.
LA 한인타운 인근에서도 수년 동안 비어 있던 집들이 최근 팔려나간 사례가 많다. 매매 계약 체결 지수도 2년래 최고고 케이스 실러 미국 20대 도시 주택가격 지수도 6월 2년 만에 처음 0.5% 상승했다. 2년 전에는 오바마 행정부의 세금 크레딧에 힘입어 올랐지만 이번에는 자력으로 이뤄낸 것이라 더 값지다.
그러나 이런 회복 조짐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초 같은 주택 호황이 다시 오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길게 보면 미국 집값은 인플레와 비슷한 비율로 올랐다. 주택을 주거 수단이 아니라 투기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주택 버블 붕괴와 대불황이 뼈에 새겨준 이 교훈을 또 다시 잊어서는 안 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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