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다르다-. 수 십 번, 아니 수 백 번 들어온 이야기다. 뭔가 변화의 조짐이 있다. 그 로 보아 개혁개방이 뒤따를 것 같다. 기대감이 높아진다. 그러나 결국은 틀린 관측에, 잘 못된 기대였다.
김정일이 사망한지 9개월째다. 뭔가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 드러난 가장 큰 변화는 ‘리설주’의 등장이다. 부인과 공개적으로 팔짱을 끼고 걷는 김정은. 그 모습만으로도 변화가 읽혀진다.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잡겠다.” 김정은이 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북한 군부 1인자가 돌연 숙청됐다. 거의 같은 타이밍에 나온 것이 6.28 경제조치다. 그리고 장성택이 대규모 수행원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다.
‘이번에는 진짜 다르다’-. 이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또 다시 제기되고 있는 관측이다. 과연 그럴까. 많은 북한 관측통들은 ‘그럴 것이다’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제이 얼펠더 같은 사람도 그 하나로, ‘권위주의 형 정치경제논리’란 독특한 이론을 바탕으로 북한의 개혁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독재체제가 개혁개방으로 나간다. 어떻게. 자유를 갈망하는 시민의 저항에 부딪혀서다. 이것이 상식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체제를 위협할 반대세력이 형성되지 않았다. 지나친 압제 속에 그러나 경제가 말이 아니다.
그 경우 ‘위로부터의 개혁’을 독재체제는 때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숨통을 다소 터주어야 경제가 살아나고 체제유지에도 도움이 되니까. 1980년대 중반 소련의 상황이 그 경우다.
‘부패로부터, 비효율성으로부터의 벗어나자는 개혁정책이 도입됐다. 그 추진세력은 시민이 아니다. 공산당 지도부다. 단지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그 목적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글라스노스트를 그 불러왔다. 개혁개방은 결국 공산 체제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미얀마의 자유화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미얀마는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부를 일굴 잠재력이 상당히 크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제재로 경제는 사경을 헤매어왔다. 그 상황에서 체제 위협 세력은 없다는 판단과 함께 미얀마 당국은 부분적 자유화를 허용했다. 목적은 경제가 회생됐을 때 그 단물을 빨아먹겠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진로를 북한체제가 답습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가 던진 관측이다.
워싱턴포스트지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6.28 경제조치에 주목했다.1970년대 초 중국이 취한 경제개혁조치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그러면서 중앙통제 배급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로, 식량부족상태가 어느 정도 완화되면 그 조치를 철회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뭔가 변화의 기대가 높은 것이 현재 북한의 분위기다.” 북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또 한 차례의 화폐개혁 가능성이다.
그 같은 관측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8월 말에 발표된 김일성대학의 경제학교수 김은철의 논문이다. 그는 정부의 통화공급 통제 의무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7월에도 비슷한 논조의 논문이 북한의 주요 경제저널에 실렸다.
무엇을 말하나. 이는 북한 정책결정자들의 생각으로 통화개혁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애드벌룬으로 띄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 2009년 북한은 통화개혁을 단행했다. 평양당국은 그러나 엄청난 대중적 저항에 부딪혔다. 공식사과도 모자라 경제 관료를 희생양으로 내세워 처형했다.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침묵을 유지하던 중국이 처음으로 북한의 붕괴 불가피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던 것도 이 무렵으로,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왜 그런데 또 다시 화폐개혁이 거론되고 있을까.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북한의 물가는 연 100%이상 뛰고 있다. 그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할 때 경제개혁은 고사하고 날로 고조되고 있는 북한의 주민의 불만을 누를 수 없다. 그만큼 절박한 처지에 몰려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그러면 변화를 추구할 것인가. ‘이번에는 그럴 것 같다’가 맞는 답 같이 보인다. 변화하지 않고는 체제의 생존이 불가능하기에 하는 말이다.
문제는 변화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는 데 있다. 지나친 변화는 군(軍)과 당(黨)과 정(政)의 기득권층의 반발을 불러 올수 있다. 그들의 이해는 현 체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흉내만의 개혁은 반대로 북한 인민대중의 분노만 심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개혁을 통한 자유화의 바람은 수령절대주의 체제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체제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경제도, 정치 이데올로기도 ‘뱅크럽시’(bankruptcy) 상태를 맞았다. 그 상황에서 수령절대주의 체제는 오직 생존만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한반도는 역사의 종언시대를 맞으면서 새로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누가 한 말이었던가. 그 진단이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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