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4년 전인 2008년 8월28일 콜로라도 덴버의 인베스코 필드는 8만4,000명의 오바마 광팬으로 메워졌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수락연설을 듣기 위해 모여든 이들을 오바마는 ‘변화’와 ‘희망’을 노래하며 열광시켰다.
역사상 처음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켜 미국의 원죄인 인종 차별을 씻고 금융 위기를 극복해 새로운 미국을 건설하겠다는 수락 연설 군중수로 사상 최대인 오바마 지지자들의 열기는 인베스코 구장을 뒤덮었다. 이들의 열정에 힘입어 오바마는 과연 첫 유색인종 대통령에 당선되는 위업을 이뤘고 ‘새로운 미국’에 대한 세계인의 기대를 반영하는 듯 노벨상 위원회까지 그에게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에서는 두 번째로 오바마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다. 오바마는 4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듯 수락연설을 악천후에도 불구, 야외에서 강행하려 하고 있지만 참석자들의 열기는 전만 못한 것 같다. 이날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폭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유권자들이 현직 대통령에게 4년 더 기회를 줄지 말지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제다. 1980년 레이건은 유권자들에게 “4년 전보다 살기가 나아졌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유권자들은 강한 “아니오”로 답했다. 이 선거에서 레이건은 총 유효 표로는 50대 40, 선거인단 수로는 489대 49, 주로는 44대 6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다.
최근 실시된 갤럽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56대 40으로 사는 것이 4년 전만 못하다고 답했다. 72%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번 대선을 좌우할 소위 ‘스윙 스테이트’에서는 경기가 좋다고 답한 사람은 14%인 반면 나쁘다고 답한 사람은 41%였다. 오바마 취임 당시 7%대이던 실업률은 8%대에 머물러 있다. 실업률이 8%대인데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여론 조사에서 오바마는 롬니와 거의 동률이고 당락을 좌우할 ‘스윙 스테이트’에서는 3% 포인트 정도 앞서 있다. 미국 유권자들은 오바마에게 실망은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안으로 롬니를 신뢰하지도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때 같으면 재선은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에서 오바마가 이 정도 지지율을 얻고 있다는 것은 롬니가 얼마나 약체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주 플로리다 탬파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가 한 말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이번처럼 대통령이 지난 4년의 업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는 처음 봤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을 졸업한 20대가 취직이 안 돼 어려서부터 살던 자기 방으로 돌아와 퇴색한 오바마 포스터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버블 붕괴와 2008년 금융 위기로 초래된 대불황이 오바마의 책임은 아니지만 오바마는 취임 후 경기 회복보다 오랜 꿈이던 전국민 의료 보험 입법에 전력투구했다. 공화당과 많은 미국인들의 반대에도 불구, 민주당 독단으로 의회 통과에는 성공했으나 이로 인해 ‘국민 통합’을 외쳤던 선거 공약은 공염불로 끝났고 2010년 중간선거에서도 참패했다.
전국민 의료 보험이 국민 보건을 얼마나 향상시킬지는 모르지만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은 분명하다. 거기다 내년도 세율이 어떻게 될지 불투명한 상태에서 부유층과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것들이 불황 후 연 평균 4%대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2%대의 저조한 회복세를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는 취임 전 10조달러에 달하는 국채는 수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재임 기간 빚은 5조달러가 더 늘어났으며 향후 4년간 다시 5조달러가 증가할 전망이다. 그는 12년 후 바닥이 나는 메디케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4년간 성적표를 묻는 질문에 스스로도 A를 줄 수는 없었는지 오바마는 ‘미완성’(I)이라고 답했다. 미국 유권자들은 과연 미완성 대통령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것인가.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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