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정강, 불법체류자와 전쟁을 선포하다” - 비명 지르듯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눈길을 잡아끈다. 애리조나 데일리 스타의 어제 사설 제목이다.
태풍으로 일정이 연기되었던 공화당 전당대회의 사실상 첫날인 28일 압도적으로 채택된 2012년 공화당 정강은 ‘반이민’ 색채가 강렬하다.
라티노와 한인을 비롯한 이민유권자의 공화당 대선후보 미트 롬니 지지율은 30%를 못 넘고 있다. 보수신문 월스트릿저널도 “공화당 백악관 탈환의 가장 큰 위협은 마이너리티 유권자 포용에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화당이 백인표의 60%를 얻는다 해도 급성장 중인 이민표밭, 특히 라티노 유권자에게 어필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오랫동안 통치권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다.
이런 정치적 환경에서 볼 때, 금년 공화당의 ‘반이민’ 정강은 승리 위한 당의 저변확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민관련 정강은 워싱턴포스트의 표현대로 “1,100만 기존 불법체류자에 대한 전쟁선포 수준”이다 : 합법이민에게도 차별단속이 우려되는 애리조나와 앨라배마 이민단속법 조항을 연방법에 도입시키고, 이들 주의 반이민법에 대한 법무부 소송을 중단시키며, 불체자를 포용하는 성역도시와 불체학생들에게 거주민 학비 적용을 허용하는 대학에 대한 연방지원금을 중단시키고, 전국 모든 고용주에 종업원의 이민신분 확인을 의무화하는 한편, 미-멕시코 2,000마일 전 국경에 이중장벽을 설치하며, 영어를 미전국의 공용어로 지정할 것을 촉구한다?
이렇게 불법체류자의 일상유지를 불가능하게 몰아붙여 그들 스스로 떠나게 하자는 롬니의 비인도적 ‘자진추방’ 제안을 공식적으로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미 경제의 상당부분이 이들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은 인정했는지 초청노동자 프로그램엔 소극적 지지를 표했다. 700만 명의 현재 노동력을 포함한 1,100만 명을 다 몰아내고 새로 임시노동자를 초청하는 복잡한 대대적 업무를 공화당의 예산 대폭삭감 ‘작은 정부’에서 어떻게 처리할지는 물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전당대회에서 정강은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항목이다. 전통적으로 후보의 통치방향보다는 당내 각 이해그룹의 요구들을 조율한 타협내용이 조각보처럼 이어져 있는 수십페이지 분량이어서 아무도 제대로 읽지 조차 않는다. 1932년 루즈벨트의 ‘뉴딜’, 1965년 존슨의 ‘빈곤과의 전쟁’, 1994년 공화당의 ‘미국과의 계약’ 등 유명한 것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관심권 밖이었다. 그러나 럿거스대학의 제럴드 폼퍼교수는 역사적으로 보면 대선승리 정당은 집권 후 정강의 70% 이상을 추진해왔다면서 정강은 앞으로 국가 통치의 방향을 알려주는 “대단히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금년 공화당의 정강은 그들 스스로 인정하듯 과거 어느 때보다 강경한 보수 성향을 최대로 반영했다. 반이민 뿐 아니라 바우처 지급을 통한 메디케어 민영화 개혁과 정부의 규모 축소를 명시했으며 반 동성애, 예외 없는 반 낙태 및 증세제한을 위한 개헌 촉구 등이 포함되었다. 등 돌린 이민표밭과 함께 여성과 젊은 층의 표심도 멀어져 가고 있지만 당내 극우세력인 티파티, 총기협회, 복음주의 기독교도 등 보수그룹들은 흐뭇하게 만족을 표했을 것이다.
공화당이 언제나 ‘반이민’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 정강엔 “영어가 주 언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육과 취업기회를 금지 당해선 안된다”는 내용이 들어갔고 2000년엔 농장노동자 프로 확대가 촉구되었으며 2004년 정강은 부시의 기존 불체자 신분합법화 방침을 전제로 “그늘에서 나와 미국경제에 합법적으로 참여하도록” 허용하는 프로그램을 지지하기도 했다.
‘친이민’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이스는 현재의 공화당에도 남아는 있다. 라티노 지지가 대선승리를 좌우할 절대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젭 부시는 “멍청한 행동을 중단하기만 하면 공화당도 라티노 표밭에 어필할 기회가 있다”고 역설했고 월스트릿저널의 소유주 루퍼트 머독은 “라티노 불체자들에게 시민권을 주라. 근면하게 일하는 충실한 납세자들이다. 왜 롬니가 그렇게 안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들은 타고난 공화당인데?”라며 혀를 찬다.
라티노 뿐 아니라 한인도 사실 ‘타고난 공화당’의 기질이 다분하다. 아메리칸 드림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공유하며 동성결혼, 낙태 등 사회이슈에서도 보수성향이 강한 편이다. 미국의 인구변화와 함께 이젠 주변 마이너리티가 아닌 중심 머조리티의 한 부분으로 사회에 참여할 준비가 된 적극적 그룹이기도 하다.
공화당 전당대회 풍경은 흥미롭다. 관중석은 거의 백인 일색이지만 무대 위엔 미국의 변하는 오늘을 반영하듯 라티노와 흑인 등 다양한 얼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다양한’ 스타 출연은 공화당이 반이민 정책을 고수하는 한, 장식용 “쇼 윈도우 정책”으로 비칠 뿐이다. 이민표밭의 지지율을 높이지는 못할 것이다.
공화당이 이번 정강에서처럼 노골적으로 ‘반이민’을 천명하고 나서면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들에겐 ‘이념적’인 하나의 이슈일지 모를 ‘이민정책’이 이민사회에선 생존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민사회에도 경제정책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민정책은 이민사회 스스로가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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