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화당은 되는 일이 없다. 공화당 출신 연방 하원의원이 갈릴리 호수에서 나체로 수영한 사실이 드러나 망신살이 뻗친데 이어 미주리주 연방 상원의원 후보인 에이킨이 “‘진짜 강간’으로는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황당한 주장을 해 당이 발칵 뒤집혔다. 이 발언과 함께 미주리 주에서 이겨 잘 하면 상원 다수당이 될 수 있다는 기대는 물론이고 가뜩이나 취약한 여성표가 뭉텅이로 날아가게 생겼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신은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는 플로리다 탬파로 허리케인 아이작까지 보내 회의를 방해하고 있다.
거기다 롬니는 근래에 나온 후보 가운데 보기 드물게 약한 인물이다. 요즘 같이 경기가 나빠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때는 그가 억만장자라는 사실 자체가 우선 거슬린다. 세금은 보통 직장인들보다 작은 15%만 내면서 “나는 사람들을 해고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등 어처구니없는 말실수까지 종종 한다.
이 정도면 공화당이 나가 떨어져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도 최근 나온 워싱턴포스트-ABC 여론 조사는 거꾸로다. 롬니가 오바마를 47%대 46%으로 근소한 차지만 앞서 나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경제 때문이다. 응답자의 과반수가 오바마의 경제 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0년 간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온 콜로라도대 연구 보고서도 롬니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 대선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경제인데 지금 같은 성적으로 재선은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실업률이 8%를 넘어서는데도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없다.
이런 여러 분석에도 불구하고 올 대선에서 누가 이길지는 불투명하다. 앞으로 남은 두 달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대선 이후다. 일부에서는 롬니와 오바마 누가 되든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 오바마야 지난 4년간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지는 않을 것이고 롬니 또한 온건파 공화당원이기 때문에 파격적인 정책 전환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주목받는 사람이 부통령으로 지명된 폴 라이언이다. 그는 롬니나 오바마와는 달리 미국 장래에 대해 큰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메디케어와 소셜 시큐리티 등 현행 사회 복지 제도를 그냥 놔둘 경우 20~30년 미국 재정을 파탄내고 미국의 존립과 후손들의 삶을 위협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고령자에게 의료 바우처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라이언 안이 결국 이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극단적이고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오히려 라이언 안이 현행 수혜자는 물론 55세 이상 국민들까지 개혁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면서 이들에게까지 고통을 분담시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라이언이 이들을 제외한 것은 이들까지 포함시킬 경우 개혁안 통과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실제로 당장 밥을 거저 주겠다는 후보와 주던 밥까지 중단하겠다는 후보가 경쟁을 벌일 때 주지 않겠다는 후보에게 표를 줄 유권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지금 미국인들이 누리고 있는 혜택은 매년 1조 달러가 넘는 적자를 내고 있는 미국 정부가 주는 것이며 이렇게 쌓인 빚은 고스란히 후손들이 갚아야 한다.
롬니는 라이언을 택함으로써 스스로 패배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1964년 대선에서 반공과 시장주의를 기치로 내건 배리 골드워터는 50개 주 가운데 44개주에서 참패했지만 그의 정신은 로널드 레이건에게 계승됐으며 레이건은 집권 후 그의 정책을 실천에 옮겨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고 미국 경제를 살렸다. 그 골드워터와 레이건에 따라다니던 수식어가 “위험한 극단주의자”였다.
골드워터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부터 ‘건국의 아버지’에게 이르기까지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항상 ‘위험한 극단주의자’였다. 과연 미국인들은 파탄의 그 날까지 모래 속에 머리를 박고 어영부영 살 것인가, 아니면 개혁을 통해 건전한 재정의 토대 위에 미국을 새롭게 세울 것인가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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