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케어‘가 드디어 금년 선거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논쟁의 핵심은 공화당이 추진하는 메디케어의 ‘민영화‘다. 2주전 폴 라이언이 공화당 대선후보 미트 롬니의 러닝메이트로 선정되면서 논쟁은 불붙기 시작했다.
라이언이 누구인가. 오바마 진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메디케어를 죽이려는 계획의 설계자”다. 지난해 그가 작성한 대규모 지출삭감 연방하원 예산안의 핵심이 바로 메디케어 전면개혁이다. 당시 개혁의 근간이 메디케어의 민영화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정부운영 의료보험에 의존하고 있는 수천만 노인들의 반대여론이 들끓자 라이언은 한 발 물러났다. 현행 메디케어에 가입하는 것도 ‘옵션’의 하나로 포함시킨 것이다.
이번 선거를 오바마의 ‘실패한 경제정책’에 대한 ‘심판’으로 집중하려던 롬니의 계획엔 약간 제동이 걸렸다. 충실하고 파워플한 유권자 집단인 노인들에게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가 메디케어이며 노인들이 단결하여 등을 돌린다면 어느 후보도 당선되기 힘든 것이 미국 표밭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표밭의 메디케어 논쟁 - 민주당에겐 지난 몇 달 기다렸던 ‘황금의 기회’가 온 것이지만 “한판 해보자”는 공화당의 각오 또한 만만치 않다.
메디케어 논쟁은 두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첫째는 USA투데이가 지적한 대로 ‘불편한 진실’에 대한 인정이다. 첫째 진실은 위태로운 메디케어의 재정이다. 택스와 보험료를 합한 수입으로는 현행 경비의 절반을 겨우 감당할 정도다.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노인인구는 급증하고 수명도 늘어나고 의료비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다. 둘째 진실은 “고통 없는 해결책은 없다”는 사실이다. 후보들이 어떤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해도, 또 누가 승리한다 해도 메디케어 혜택은 줄어들고 수혜자들의 부담은 늘어날 것이다.
둘째는 민주-공화 양당 후보들의 대책 비교다. 오바마와 롬니(혹은 라이언)의 메디케어에 대한 플랜을 정확히 알아야 후회 없는 ‘선택’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오바마 플랜은 헬스케어 개혁안, 오바마케어와 맞물려 있다. 의료서비스 가격 통제를 통한 지출삭감 단행, 의료서비스 개선 위한 감독과 시험프로, 의료비 상승통제 위한 위원회 구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오바마 플랜은 현행 메디케어 유지를 전제로 하고 있어 획기적인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일부에선 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계속 삭감하면 병원과 의사, 너싱홈 등의 파산이 속출해 의료진 부족으로 수혜자들이 불편을 겪는 ‘배급제’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드라마틱한’ 개혁안은 공화당 플랜이다. 노인들에게 정부에서 일정액수의 바우처(쿠폰)를 지급하여 각자 민간보험에 가입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정부보험의 ‘민영화’다. 그러나 롬니가 ‘메디케어 민영화’에 대한 정치적 위험부담을 모르겠는가. ‘민영화’나 ‘바우처’란 자극적 용어를 피하고 대신 ‘보험료 지원’이라는 무색무취한 단어를 사용한다.
노인고객들을 유치하려는 민간보험회사들의 경쟁으로 보험료가 인하될 것이라는 시장의 원리를 전제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랬듯이) 보험료가 내려가지 않을 경우, 상한선이 정해진 정부의 바우처 액수는 오르지 않는다. 가격 인상분은 노인 각자가 부담해야 된다는 뜻이다. 공화당안이 시행될 경우 노인들은 2030년엔 1인당 연평균 2,200달러의 보험료를 더 내야할 것으로 LA타임스는 의회예산국(CBO) 추산을 인용해 보도했다.
메디케어 민영화는 결국 정부가 부담하고 고민해온 의료비 상승의 대책을 노인 각자에게 떠넘기겠다는 셈이 된다. 여론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틀전 발표된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 라이언 개혁안에 대한 반대는 49%로 지지 34%보다 훨씬 높았다. 65세 이상 응답자의 경우 반대는 55%로 더 올라갔다.
여론을 감안, 공화당 플랜은 현행 ‘메디케어’도 가입할 수 있는 옵션의 하나로 남겨두었으며 시행은 현재 55세 미만인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다. “노인유권자 여러분의 메디케어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달래기 작전일 수도 있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메디케어 논쟁에선 롬니가 선제공격을 가했다. 오바마가 메디케어에서 7,160억 달러를 “약탈”하여 오바마케어 경비로 돌려쓰려 한다고 공격을 퍼부은 것. 물론 사실과 다르다. 7,160억 달러는 보험회사와 병원에 대한 지출삭감 등에 의한 메디케어 경비절약 예상 액수로 이 돈을 저소득층 무보험자 지원과 메디케어 처방약 지원 등에 사용하려는 플랜이다.
롬니는 자신이 오바마의 “약탈”을 저지하고 “여러분의 메디케어를 지켜내는 한편 오바마케어를 폐기해 7,160억 달러의 삭감도 환원시키겠다”고 노인유권자들을 향해 공언했다.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이 지향하는 큰 정부의 상징인 메디케어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것도 어색하지만 7,160억 달러의 삭감을 환원시킬 경우 발생할 적자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럴 경우 메디케어가 당장 4년 후가 파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제학자들은 경고하는데…
지금까지 정부의 가격 통제로 지출삭감이 성공한 확률은 높지 않아 오바바 플랜 역시 메디케어를 지켜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민영화는 더욱 불안하다. 국민의 건강은, 특히 사회의 약자인 노인들의 건강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기업보다는 치안이나 국방처럼 정부의 책임으로 남겨두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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