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가정환경을 딛고 일어서 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정치 지도자의 하나로 영국 엘리자베스 1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의 불행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남자 아이를 낳아 왕위를 잇게 해야 한다는 아버지 헨리 8세의 집념에서 시작됐다.
헨리 8세의 아버지 헨리 7세는 30년간 내전으로 영국을 황폐하게 만든 소위 ‘장미 전쟁’(랭카스터 가문의 상징은 ‘빨간 장미’, 상대방 요크 가문의 상징은 ‘하얀 장미’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을 종식시키고 영국에 평화를 가져온 인물이다. 그는 자기 대를 이을 아들이 태어나자 전설 속의 위대한 왕 ‘아더’를 본받으라는 뜻으로 아더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리고는 당시 유럽의 최강국이던 스페인과의 관계를 다지기 위해 스페인 공주 캐더린을 며느리로 맞아 드렸다. 그러나 15살에 결혼한 아더는 불행히도 신혼의 단맛을 보기도 전 그해 병으로 급서한다. 스페인과의 동맹 관계를 무시할 수 없었던 헨리 7세는 캐더린을 둘째 아들 헨리에게 다시 준다.
아버지가 죽자 왕위를 이어받아 헨리 8세가 된 헨리 부부 사이는 캐더린이 딸 메리만 낳고 계속 유산을 해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자 점점 벌어지고 결국 헨리 8세는 아들을 낳기 위해 이혼을 감행한다. 스페인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던 교황청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헨리 8세는 가톨릭과의 관계를 끊고 교회 재산을 몰수한 후 스스로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된다.
그는 그 후 오랜 전부터 마음에 두어온 앤 볼린을 왕비로 맞지만 이 역시 딸 엘리자베스 하나만 낳고 말자 간통이란 죄목을 뒤집어 씌워 처형한 후 제인 시모어와 결혼한다. 시모어는 그가 꿈에도 그리던 아들 에드워드를 낳지만 곧 죽는다. 그는 그 후 클레브의 앤과 정략 결혼하나 곧 이혼하고 또 다른 캐더린과 결혼하나 이번에는 진짜 왕비가 간통을 저질러 또 처형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캐더린과 결혼하지만 몇 년 못 살고 이번엔 본인이 죽고 만다.
그가 죽은 후 그가 애지중지 하던 에드워드가 9살 나이로 왕위에 오르지만 6년 만에 죽고 첫 번째 부인이 낳은 메리가 그 뒤를 잇지만 역시 5년 만에 죽고 만다. 열렬한 가톨릭인 메리 재위 시절 프로테스탄트였던 엘리자베스는 반역죄로 몰려 런던탑에 갇히지만 겨우 살아난다.
엘리자베스는 친모가 아버지 손에 죽고 계모가 수없이 바뀌고 반역죄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 수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등 당시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는 왕위에 오른 후 스페인 부의 원천인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탈해온 금은보화를 실은 스페인 배를 나포해 부를 축적했다.
참다못한 스페인이 1588년 소위 ‘무적함대’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기습 공격으로 궤멸시켰다. 이는 그동안 스페인 배를 상대로 숱한 해적질을 해온 노하우에다. 우수한 조선 기술, 개량된 함포, 때맞춰 스페인 함대를 강타한 폭풍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뤄진 것이지만 영국인들은 이를 “짐은 영국과 결혼했다”는 처녀 여왕의 애국심 탓으로 돌렸고 이 때부터 그녀는 ‘좋은 여왕 베스’(Good Queen Bess)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녀의 집권 40여년 동안 영국은 긴 평화를 누리며 실력을 쌓아갔고 셰익스피어 같은 불세출의 문호가 나와 영국인의 자부심을 북돋아줬다. 한 때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던 대영제국의 초석은 이 때 놓여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20일 전체 유효표의 84%를 얻어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박근혜가 엘리자베스 1세를 모델로 삼겠다고 말했다 한다. 불우한 가정환경을 딛고 일어선 정치 지도자라는 점이나 어렸을 때 공부를 잘 했다는 점,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말한 것까지는 많이 닮았다. 엘리자베스의 모토였던 “나는 보지만 말하지 않는다”는 모토와도 좀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러나 지도자가 집권에 성공하고, 또 큰 업적을 남기려면 본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운이 따라줘야 한다. 과연 하늘은 앞으로 5년 간 대한민국의 운명을 누구 손에 맡기려는 것일까.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