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만<목사>
오래전 육지에서 제주도로 이주한 주민들이 밭농사를 시작할 무렵에 생긴 일이다. 제주도는 삼다(三多)중의 하나인 바람이 많은 섬이다. 농부들은 농토를 조성하기 전에, 쉬지 않고 불어오는 강한 바닷바람을 막는 일부터 해야 했다. 그들은 서로 힘을 합하여 지천에 널려있는 돌을 주어다가 밭둑을 따라가며 열심히 긴 돌담을 쌓았다. “쉬지 않고 불어오는 칼바람을 막아내려면 아주 견고하게 쌓아야 합니다. 바람 한 점 새지 않도록 빈틈없이 쌓도록 합시다!”
돌담을 다 쌓은 후 밭둑에 나가보니 이게 웬 일인가. 촘촘히 잘 쌓은 돌담이 다 뒤로 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도 이상하여 이번에는 담의 높이를 낮추어 쌓았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밤이고 낮이고 쉬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의 힘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농부들은 크게 낙심하였고 특별한 해결책이 없어 전전긍긍했다. 하는 수 없이 이번에는 돌을 다듬지도 않고 생긴 그대로 자연스럽게 쌓아보았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아무 저항 없이 지나가도록 담벼락 여기저기에 구멍도 숭숭 뚫어 놓았다. 담은 예전처럼 완벽하지 않았고 누가 보더라도 허술하고 여유 있게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며칠이 지나도 담은 까딱없었다. 오래 동안 든든했고 무너지지도 않았다.
이제야 농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하, 너무 완벽하면 무너지는 군. 좀 허술하고 여유가 있어야 오히려 든든하단 말일세.” 옆에 서있는 버드나무도 그렇다는 듯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바람에 꺾이지 않으려면 여유 있게, 유연(柔軟)하게 몸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바람결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버드나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도 매 한가지이다. 소인일수록 사소한 완벽에 매달리고, 대인 일수록 제주도 돌담처럼 구멍 뚫린 여유 속에서 최고의 길을 찾는다. 여유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것은 꼿꼿한 직선보다 부드러운 곡선의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바쁜 현대인들을 보라. 그들은 대체로 부드러운 곡선보다 날카롭고, 강하고, 속도감 있는 직선의 삶을 좋아한다. 물론 날카롭고 강한 직선은 사람을 박력 있게 만들어 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강한 직선의 삶은 인간관계의 대립과 아픔을 가져올 때가 많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의 방식을 직선의 방식에서 곡선의 방식으로 바꾸어 보라. 훨씬 더 여유 있고 부드러워 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웃에게 감동 을 주는 넉넉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강한 직선의 삶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쉽게 해결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큰 것들을 보라. 다 여유 있는 곡선으로 되어 있다. 강을 보라. 크고 긴 강은 완만하고 여유가 있어서 언제나 긴 곡선을 만들어 흐르고 있다. 산을 보라. 큰 산은 새끼 줄 감아놓듯 길고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여유 있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도도히 서 있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큰 리더일수록 여유 있는 곡선의 사람이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사울을 보라. 그들은 같은 시대, 똑 같은 환경 가운데 살았지만 다윗은 큰 여유와 곡선을 그리는 삶을 살았고, 사울은 절벽에서 급하게 떨어지는 폭포 같은 직선의 삶을 살았다.
다윗은 사울을 볼 때 마다 유연하고 부드러웠고, 사울은 다윗을 볼 때 마다 날카롭고 직선적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사도행전 13;22)는 복을 주시고 그를 리더로 들어 쓰셨다.
금년에는 유난히 여기저기서 강한 바람이 많이 분다. 항상 호전성을 가지고 덤비는 평양발 북풍(北風)이 거세다.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경색의 외풍(外風)은 아직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에게서 불어오는 독도에 대한 탐욕의 왜풍(倭風)은 우리 민족 자존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그런데다 대선을 앞두고 불어오는 선풍(選風)까지 우리를 혼란케 한다.
직선의 긴장과 힘의 대립으로 날카로워진 이 시대는 모든 바람을 시원하게 관통시켜 줄 예수의 마음을 닮은 곡선의 리더를 고대하고 있다. 하나님, 이 민족에게 리더의 복을 주옵소서. 모세, 다윗, 링컨같이 여유 있는 곡선의 리더가 일어나 세계를 리드하는 탁월한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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