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의회가 여름휴회에 들어가면서 뉴스 기근에 처한 워싱턴 정가의 요즘 최대 화두는 공화당 대선후보 미트 롬니의 부통령 후보 선정이다. 누구일까, 언제 발표할까 - 미디어들이 다투어 분석하고 예상하는 추측게임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모든 2인자가 그렇듯 그림자 같은 부통령의 역할은 아직도 심심찮게 조크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후에 대통령이 된 미국의 부통령은 14명이나 된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할 스트레스는 받지 않은 채 참모진과 백악관 내 집무실, 리무진과 제트기 서비스, 연봉 23만 달러가 보장되니 한 코미디언의 말처럼 ‘미국의 베스트 관직’이라고 할만도 하다.
부통령 후보를 보고 투표하는 유권자는 없다. 그러나 “부통령 후보 선정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74%에 달한다. 잘못된 부통령 후보 선정이 캠페인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미국의 대선 역사가 말해준다.
1972년 민주당 대선후보 조지 맥거번의 부통령 후보 토머스 이글턴의 경우로 당시 상황을 담은 ‘18일간의 러닝메이트’가 최근 출간되면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맥거번이 원래 원했던 러닝메이트는 테드 케네디였다. 그러나 거절당했다. 연방 상원의원 월터 먼데일도 고사했다. 다급해진 맥거번에게 젊고 매력적인 42세 연방 상원의원 이글턴은 별로 나무랄 데 없어보였다.
한 시간 남짓 생각한 후 67초간의 전화통화로 선정이 마무리되었고 전당대회 사흘째인 7월13일 이글턴은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워낙 벼락치기 절차였기도 했지만 이글턴은 자신이 우울증으로 3차례 입원했고 전기충격치료도 2차례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전당대회 후 휴가지에서 이 소식을 듣게 된 맥거번은 아연실색했지만 즉각 대응을 주저했다. 자신의 딸 역시 우울증을 앓았기 때문이다. 결국 18일 만에 이글턴은 사퇴했으나 이미 직격탄을 맞은 후였고 맥거번은 그해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에게 참패당했다.
40년 전 이글턴의 교훈과 4년 전 새라 페일린의 교훈까지를 되새기며 철저한 검증에 몰두해온 롬니의 부통령 후보 선정 발표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역대 발표 시기는 전당대회 며칠 전이 보통이었다. 2008년 오바마는 이틀 전에, 매케인은 사흘 전에, 1992년 클린턴은 나흘 전에 각각 러닝메이트를 발표했으며 레이건이나 카터처럼 전당대회 중에 발표한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롬니의 발표 시기는 이번 주말 시작되는 4개 경합주 버스투어와 맞물리면서 다음 주가 되지 않을까하는 추측이 흘러나온다. 버지니아-노스캐롤라이나-플로리다-오하이오를 나흘간 순방하는데 각 지역에서 밥 맥도넬 버지니아 주지사,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 연방 상원의원, 롭 포트먼 오하이오 연방 상원의원 등 유력 후보들이 차례로 합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버스투어는 부통령 후보 ‘최종 오디션’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언제?’를 놓고도 당내에선 득실을 제시하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쪽에선 빨리 선정해야 캠페인 업무를 분담할 수 있고 무엇보다 오바마를 무차별 강타할 새로운 ‘공격수’가 확보된다며 ‘조기 발표’를 주장하는가 하면, 미리 발표할 경우 전당대회 무렵엔 김이 빠질 뿐 아니라 미디어에게 새 후보의 흠집 발견할 시간만 주는 격이라며 전당대회까지 늦추라는 조언도 만만치 않다.
롬니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지만 ‘누구?’에 대한 논란 역시 아직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어제 NBC 정치취재팀은 최종 후보를 3명으로 압축했다 : 전 미네소타 주지사로 경선에 출마했다 하차한 팀 폴렌티, 롭 포트먼, 연방하원 예산위원장 폴 라이언… 여기에 마르코 루비오까지 더한 4명이 상위권으로 거론되고 있다.
포트먼과 폴렌티가 경험 풍부하나 밋밋한 50대 백인남성 정치인이라면 40대 초반의 라이언과 루비오는 공화당의 떠오르는 스타들로 젊은 피를 상징한다. 롬니가 선호하는 ‘안전한 선택’은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나이스 젠틀맨” 포트먼이나 “행정 경험 풍부한 충실한 대리인” 폴렌티 쪽일 것이다. 그러나 당내 엘리트 일각에선 “공화당의 지성적 리더”인 라이언이나 “공화당 미래의 비전인 재능 넘치는” 루비오를 등용하는 ‘과감한 선택’으로 시들해진 공화당 표밭에 익사이팅한 열기를 되살리라는 요구가 강력하다.
롬니와 가장 코드가 잘 맞는다는 포트먼은 부시행정부의 예산국장을 역임한 경력이 발목을 잡고 공화당 지성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라이언의 예산안엔 메디케어 대폭 개혁이 포함되어 있어 친 공화당인 노인표의 반란을 불러올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사회 각종 이슈에 대한 내기를 주관하는 온라인 예측시장 인트레이드닷컴에서의 베팅은 어제(8일) 오후 1시 현재 포트먼이 36%로 1위에 올라있었다.
갖가지 추측 속에 미디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벌이는 취재경쟁이 뜨겁고 오바마 진영은 누가 되든 즉각 공격에 돌입할 준비를 완료한 상태지만 정작 롬니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철통보안을 견지하고 있다.
달아오르는 기대를 스포트라이트 속에 끌어모아 홍보의 극대화를 거두기 위해서다. 러닝메이트 발표는 캠페인의 가장 중요한 일정 중 하나로 꼽힌다. 운이 좋으면 새얼굴에 대한 익사이팅한 열기를 선거까지 끌고 갈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거까지는 이제 89일 남았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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