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1초는 째깍하고 지나가는 아주 짧은 시간이다. 시간의 단위에서 가장 짧은 순간을 나타낸다. 그러나 1초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너무나 많다. 사람이 수명을 다해 운명하는 순간도 1초에 일어난다. 째깍하는 순간 숨이 끊어진다. 1초라는 짧은 순간 생사가 갈린다. 우연 같은 일들이 1초 안에 일어나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예는 흔하다.
70억의 인구를 안고 사는 지구에서 단 1초 동안에 일어나고 있는 공동 현상을 살펴본다. 1초에 420톤의 비가 쏟아진다. 1초에 쌀 80가마가 재배된다. 1초에 사람들은 134억 8천만 개의 식물, 곤충, 동물을 죽인다. 1초에 승용차 1대와 4대의 텔레비전이 만들어진다. 1초에 새 생명 8명이 탄생하고 5명이 목숨을 잃는다.
1초가 쌓이고 쌓여 1억2,614만4,000초를 기다려 올림픽 금메달을 쟁취하려 했던 한국 팬싱국가대표 신아람(26). 그가 1초의 멈춰짐에 통한의 패배를 당했다. 지난 7월30일 아람은 독일선수와 준결승전에서 5대5로 연장전에 돌입 1분간의 공격을 막아내면 승리였다. 아람은 3차례의 공격을 잘 막았다. 시계는 1초를 남겨두고 있었다.
1초만 지나 0으로 바뀌면 아람의 승리다. 그런데 시계가 계속해 1초를 가리키고 있는 사이 아람은 두 번의 공격을 받고 점수로 이어져 패배를 선언 당했다. 1초의 멈춰짐. AFP통신은 ‘신아람의 멈춰진 1초시계’사건을 두고 올림픽의 5대 판정논란에 포함시켰다. 올림픽의 오심 판정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나 판정은 번복될 수 없나보다.
몇 년 전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교차로에서 자동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사고였다. 자동차는 견인차에 끌려 갈 정도로 파손됐다. 충돌 시간은 1초에 불과했다. 찰나 같은 1초를 서로 비켜갔으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초를 못 벗어난 그날 사고는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필연이었나. 운전자들은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시간은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 중 하나에 속한다. 존재 자체가 시간을 떠나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래 시간이란 초, 분, 시로 나뉘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태초부터 흐르고 있을 뿐이다. 다만 인간이 편리하게 시간을 그렇게 만들어놓고 그에 맞추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날(日)과 달(月)과 년(年)도 마찬가지다.
시간(時間)안엔 시, 즉 때와 간, 즉 공간(空間)이 들어있다. 시간은 공간과 함께한다. 시간은 헬라철학에서는 두 가지로 구분한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다. 크로노스는 흐르는 시간을 말한다. 카이로스는 구체적인 사건의 순간이나 감정을 느끼는 순간, 종교적 용어론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의미 있는 순간을 뜻한다.
신아람의 멈춰진 1초의 시간은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다. 4년 동안 하루도 쉼 없이 오로지 금메달만을 목표로 훈련했던 그녀. 그가 우승을 목전에 놔두고 준결승에서 시계고장? 혹은 조작?으로 판정패 한 것은 흐르는 순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신아람과 한국에게는 잊지 못할 통분의 시(時)로 남게 되니 카이로스에 해당된다.
우리네 삶 속에 흐르는 시간. 1초1초가 카이로스가 될 순 없다. 그러나 1초1초에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카이로스적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는 구름마냥 크로노스처럼 시간을 죽여만가는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오늘 하루의 삶과 생은 세상 어느 순간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순간순간을 귀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존재의 의미를 알고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태어났으니 목숨부지하고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가. 생은 유일회(唯一回)성이며 카이로스적이다. 인간의 생명자체가 갖고 있는 시간 속엔 우주가 범치 못할 존재의 귀중함이 있다.
동물과 사람의 다른 점이 있다. 동물들은 크로노스적 생을 살며 사람은 카이로스적 생을 사는 것이 다르다. 사람이 순간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신이 내린 인간에게만 주는 축복중의 축복이다. 1초는 아주 찰나 같은 순간이지만 그 1초 안에 의미와 사건이 부여되면 인류와 개인의 역사가 통째로 바뀔 수 있다. 신아람의 멈춰진 1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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