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오랜만에 힘을 쓸 일이 생겼다. 버지니아 애난데일 지역에 위치한 Annandale Christian Community for Action (ACCA)이란 기관이 매주 토요일 어려운 가정에 무료로 가구를 나누어주는데 동참해 자원봉사를 하게 된 것이다. 주로 책상에 앉아 일을 하느라 평소에 운동도 제대로 안하는 나에게는 약간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땀도 빼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어 보람을 느꼈다.
ACCA는 1967년에 에난데일에 위치한 8개의 교회가 모여 어린 아이들을 데이케어에 맡길 경제적 능력이 없어 힘들어 하는 이 지역의 가난한 가정들을 돕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그 동안 참여하는 교회의 숫자도 거의 4배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데이케어뿐 아니라 재정적 사정이 급박한 사람들에게 식비나 의료비, 렌트, 공공요금 등을 긴급 보조하기도 한다. 또 저소득층 집들을 수리해 주기도 하고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과 병약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해 갖다 주기도 한다. 노숙자 쉘터를 떠나는 사람들이 자립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가구, 부엌용품 그리고 경제적 보조를 제공하기도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장애인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수여하고 차가 없는 사람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교통편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지난 토요일에 참여했던 프로그램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기증받은 가구들을 필요로 하는 가정들을 찾아가 직접 전달해 주는 일도 한다.
가구 전달을 하다 보면 우리 주위에 어렵게 사는 이웃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훼어팩스카운티 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25% 이상이 정부가 주는 급식비 보조대상이라는 믿기 힘든 놀라운 통계수치가 가구를 전달받는 가정에 직접 가 보면 실감이 난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인데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는 고민도 하게된다. 물론 경기침체로 인해 한인동포 사회 내에서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잘안다. 그러나 가구를 전달해 주면서 만난 이들의 모습은 훨씬 더 했다. 우리도 어렵지만 그럴 때 일수록 우리의 이웃을 돌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가구 하나 제대로 없는 거실에서 사는 이들을 보면서 거의 40년전에 비슷하게 시작했던 나의 이민 생활도 생각났다. 어느날 내가 살던 아파트에 백인 고등학교 친구 몇 명이 기습적으로 찾아 왔다. 거실에 놓여진 가구란 허름한 것 몇 개에 불과했고 방이 부족해 침대까지 있었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안으로 들어오란 말도 못 건넸다. 그리고 그 때 그랬던 것이 마음에 부담되어 오래동안 그 친구들을 제대로 바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가난했고 구겨진 자존심에 눌려 있었던 그 때의 기억이 지난 토요일에 가슴에 찡하게 다시 찾아 왔다. 그러면서 나에게 가구를 전해 받는 가정들에서 자라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그런 생각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ACCA의 여러 활동상을 접하면서 아쉬운점이 있다면 이 기관의 27개 회원 교회 가운데 한인교회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인 타운이라 불리기까지 하는 애난데일에서 말이다. 물론 한인 교회가 꼭 이런 기관에 가입하지 않고도 자체적으로 충분히 지역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기관에 가입된 교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에서 한인 교회들도 한인 사회 밖의 교회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욱 좋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한인들은 자신들끼리만 모여 살고 지낸다는 비판을 종종 듣는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안하지만 우리 한인 사회의 울타리를 벗어 나 우리와 다른 모습의 이웃들과 함께 이웃임을 알리고 전하는 일에 상대적으로 인색한 편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한인 동포 사회에서 교회만큼 한인들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공동체도 없다. 그러기에 교회가 한인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선도적 역할은 한인 사회 밖의 이웃과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이는 부분까지 발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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