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버락 오바마가 첫 해외순방을 떠난 것도 7월이었다. 선거전의 한복판에서 후보가 표밭을 떠나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8개국을 도는 10일간의 살인적 일정을 강행했다. 상대후보 존 매케인에게 뒤지는 유일한 분야였던 ‘외교와 국가안보’에서 ‘통수권자의 자질’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기대이상의 성공이었다. 아프간과 이라크 방문은 ‘통수권자의 전황 시찰’을 방불케 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균형을 시도한 까다로운 중동방문도 무사히 마쳤으며 수십만 관중들의 환호를 받은 유럽에서의 인기는 어느 록스타 못지않았다.
“유럽인들이 유권자였다면…” 민주당의 진심 담긴 조크가 나돌 정도였다.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 미트 롬니의 첫 해외순방도 같은 기대에서 마련되었다. 외교경험 없는 기업가 출신의 후보도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충분히 대표할 수 있는 ‘준비된 통수권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7월25일부터 7일간 일정으로 방문할 3개국도 - 올림픽 시즌에 맞는 비유를 하자면 - ‘난이도 낮은’ 안전지대들로만 택했다. 미국의 우방, 특히 보수진영의 확실한 맹방인 영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폴란드…모양새 좋은 사진들을 남기며 기분 좋게 끝낼 줄 알았던 ‘친선방문’은 그러나 성공은커녕 영국 가디언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타일은 미숙하고 알맹이는 빈약한” 후보의 실체를 보여주는 악몽이 되어버렸다. 롬니와 참모들의 말실수가 잇단 물의를 빚은 것이다.
“영국인들이 유권자가 아닌 게 롬니에겐 정말 다행…”이라고 한 케이블TV가 보도할 정도였다.
곳곳마다 이어진 구설수는 첫 방문지인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도착 첫날 NBC와 인터뷰를 가진 롬니가 런던올림픽 준비상태에 의문을 제기하며 “성공적으로 개최될지 모르겠다…영국인들이 올림픽 개최를 함께 축하하고는 있느냐”고 반문한 것.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영국 언론들이 계속 보도한 내용이었으니까. 그러나 남의 잔치에 재 뿌리는 롬니의 ‘무 매너’를 참을 영국이 아니었다.
기분 상한 총리는 “바쁘고 활기찬 세계의 중심지(런던)에서 치르는 올림픽과 달리 외딴 곳(솔트레이크)에서 올림픽 치르기는 훨씬 쉬울 것”이라는 한마디로 롬니의 올림픽 운영 경력을 평가절하 시켜버렸다. 2002년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경력을 강조하며 ‘올림픽 맨’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던 롬니진영의 전략이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다혈질인 런던시장은 행사장에서 “미트 롬니라는 자가 우리 준비상황이 걱정 된다는데 여러분, 준비되었습니까?”라고 물으며 발끈한 시민들로부터 “예스, 위 캔”이라는 오바마의 구호 함성을 이끌어냈고 한 타블로이드 표지는 “멍청이 미트(Mitt the Twit)”라는 헤드라인으로 장식되었다.
이스라엘 방문도 순조롭지 않았다. 오바마와 사이가 뜨악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는 ‘절친’관계를 과시하며 환영을 받았지만 한 모금행사 연설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보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은 문화적 차이 때문”이라고 말해 팔레스타인의 분노를 산 것이다. 팔레스타인 쪽에선 즉각 “인종차별적 발언”이라며 “이 사람은 이스라엘의 교역제한으로 이 지역 경제활동이 제약받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정보와 지식, 비전과 이해가 결여된 사람”이라는 강한 비판이 날아왔다.
마지막 방문지 폴란드에선 잘 넘어가는 듯 싶었다.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의 공개지지도 얻어내고 양국의 유대를 재확인하는 연설도 박수를 받았으며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까지 무사히 마쳤다. 마지막 해프닝이 터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순방 내내 수행기자단의 질문을 거의 받지 않은 롬니에게 기자들이 고함을 질러가며 질문을 해댄 것이다. 롬니는 무시했지만 대변인 릭 고르카는 (한 성질 하는지) 참지 못했다. 기자들에게 “빌어먹을” “집어치워” 등의 막말을 퍼부은 것. 후에 사과했지만 이미 전 세계로 타전된 후였다.
‘준비된 대통령’을 보여주려던 롬니의 첫 해외순방은 풍성한 ‘실언 기록’들을 남기며 끝났고 롬니는 31일 조용히 귀국했다.
영국에선 외교정책에 대한 신뢰도, 이스라엘에선 미국내 유대계 표와 자금을 겨냥한 캠페인외교, 폴란드에선 미국내 가톨릭 표밭 다지기를 목표했다는 ‘전략’을 감안한다면 롬니의 이번 순방에 성공적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체면은 다소 구겼지만 300백만 달러라는 거금을 거두었고 팔레스타인의 분노는 샀지만 ‘친이스라엘’의 이미지는 확실하게 다졌으며 미국내 폴랜드 표밭에 어필할 교두보도 확보했다.
그러나 롬니 캠페인의 주요한 챕터로 기록될 첫 해외순방의 성적표는 신통치 못하다. 구설수 사이사이 드러난 롬니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빈약하고 단순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대부분이다.
다행인 것은 해외에서의 구설수가 미국 표밭에선 별 힘을 못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림픽에 열중한 사람들의 관심을 못 끌어서일 수도 있고 워낙 ‘외교’가 유권자의 관심 밖 주제여서일 수도 있다.
재난의 7월을 보낸 롬니의 8월 전망은 나쁘지 않다. 내일이면 오바마를 곤혹스럽게 할 고용보고서가 나올 테고 올림픽이 끝나는 8월 중순엔 부통령 후보 선정으로 뉴스의 각광을 받을 것이며 27일부터 나흘간은 전국의 조명이 ‘롬니 후보등극’에 집중될 공화전당대회가 열린다.
초라한 외교성적표를 빨리 잊기 위해서라도 롬니에겐 지금 성공적인 8월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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