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금요일 깊은 밤, 콜로라도의 오로라에 위치한 극장 안에서 총에 맞아 12명이 죽고 60여명이 부상당했다. 죽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부상당한 사람들 역시 위급한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소식이다. 그들 중 다수가 함께 온 애인이나 친구를 온몸으로 보호하다가 자신이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래도 아직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며 애써 나 자신을 위로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 있는 불안감과 당혹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콜로라도 오로라.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그 파괴의 현장과 끔찍한 사고의 흔적들과 사람들의 울음이 있는 그 곳. 나는 8년 전 그 곳을 기억에 떠올린다. 공교롭게도 나는 사고가 난 영화관은 가보지 못했지만, 영화관이 있는 오로라는 내가 4년 동안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덴버에 살았지만, 오로라를 매주 서너 번 교회를 가거나 장을 보러 다녔던 것이다. 굳이 버지니아와 비교하자면 애난데일과 훼어팩스 정도라고 할까.
조지아 애틀랜타를 떠나, 박사학위를 하기 위하여 콜로라도 덴버에 첫발을 디뎠던 2004년 7월, 수요일 오후가 기억난다. 어두운 밤에 나가도 안전한 그 곳이 요 몇 주 사이에, 전국을 들썩거리고 있는 충격적인 “미친 짓’이 발생한 곳으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 시대에 과연 우리에게 “안전”한 곳이 있는가 새삼 묻게 된다. 기독교 상담학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는 매 학기 초마다 학생들에게 모든 상담학 교실은 “안전한 장소(safe place)” 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상담학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상, 거리낌 없이 동료들에게 나를 꺼내 보일 수 있는 안전한 장소로 만들자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매우 중요한 상담학 교실 윤리라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에게 안전한 장소는 어디일까. 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전국의 영화관을 비롯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끔찍할 정도의 보안 검사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타인을 감시하게 된다. 사람이 더 이상 사람을 못 믿는, 정말 살맛 안 나는 세상으로 되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한 편 보려면, 모처럼 워싱턴 레드스킨즈의 경기장을 찾아보려면, 총을 든 사람들, 무서운 배지를 단 사람들을 통과해야만 하는 그런, 미친 세상으로 우리는 가고 있지는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나를 더 숨막히게 하는 것은, 정말로 그런 세상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날이 갈수록 더 드는 것이다.
이 사건의 희생자 중에서 제시카라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이 사건이 발생하기 바로 한 달 전에 캐나다 토론토의 유명한 쇼핑센터인 “이튼센터”에서 벌어졌었던 총격사고를 극적으로 모면한 바 있는데, 덴버로 이주하자마자, 또 이런 참변을 당하고만 것이다. 그녀는 캐나다에서의 일을 겪은 후에 이런 글을 적었다고 한다. “삶이 덧없다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서 죽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렇다.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 살다가 언제 어디서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자면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만큼 덧없는 것이 있을까. 같은 병원에서 아빠는 범인이 쏜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데, 바로 그 옆에서 그 남자의 아이가 태어나고 있는 이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나를 슬프게 한다. 이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솔직히 한인 이민사회도, 이민교회도 예전만큼 “안전”한 곳은 아니지 않는가. 먹고 살아가는 데 바빠, 내 한 몸 잘 먹고, 좋은 차 타고, 좋은 집 사는데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어느덧 우리들의 정신과 마음은 황폐해 가고 있지는 않은지 정말 정신 차리고 돌아보지 않으면, 우리 한인 이민사회도 미쳐가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신분 확인 당하고 교회에 들어갈 수 없지 않은가. 빵집에 들어가는데도 몸 여기저기 수색 당하는 일이 없는 세상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거꾸로 우리가 미친 세상의 희생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바로 콜로라도 오로라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