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가고 세월은 또 오고 ! 내 글쓰는 방 뒷 창가에, 작년에 피었던 핑크색 넝쿨 꽃, 부겐 빌리아(Bougen Villaea)가 올해도 어김 없이 피고 있다.
작년 이 달에 고추 잠자리의 날개를 타고 하늘 나라로 먼저 간, 큰 놈 세현이가 살아 있었을 그 때도, 저 꽃, 부겐 빌리아가 만발해 있었지. 하지만 계절 따라 다시 피는 꽃과는 달리 한 번 간 사람은 다시 오지 않나 보다.
나는 오늘도 회전의자를 책상 쪽으로 돌리고는 원고지를 편다. 그런데 제 에미가 예쁜 사진 액자에 꽂아 내 책상 머리에 가지런히 세워 놓은 세현이의 네살적 사진과, 초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의 앳띠고 귀여운 사진이, 이 애비를 바라보고 있다. 철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 겨우 30년 쯤을 살다간 그! 그리고 생명공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전성기부터 겨우 20년 만을 살다간 세현이!
그가 죽기 3년 전인, 그러니까 이 애비의 여든살 생일 날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타주에 살고 있는 그의 버클리대학 동기 2명까지 대동하여, 이 애비의 고향 통영까지 달려가서, 통영의 북신리 네거리에 세워진, 삼성타워 전광판에‘통영을 빛낸 문화ㆍ예술인들’과 함께 돌아가고 있는, 이 애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는 친구들과 함께 소리 높여 만세를 불렀다는 큰 놈!
이 애비가 작가로 또 연극인으로 살면서 그 놈과 누나, 그리고 동생들을 잘 돌보아주지도 못했는데도 만세를 불러준 큰 놈이 이제 내 곁에 없지만, 그가 카메라에 담아 놓고 간 이 애비의 모습은 그가 두고 간 컴퓨터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
그러나 큰 놈은 이제 어릴 적 모습으로, 사진 액자 프레임 속에 정물(움직이지 않는 모습)로 담겨져, 오늘도 내 책상 머리에서 이 애비가 글 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세현이가 통영의 삼성타워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돌아온 2년 쯤이 지나면서, 제 자신의 생명의 불씨가 가물가물 꺼져감을 느끼면서, 그는 회사를 임시 휴직하고, 제 에미의 간병을 받고 있었다.
그 때 그 놈이 제 에미에게 입버릇처럼 뇌이던 말은,“아버지와 엄마와 한 지붕 아래서 단 2년 쯤이라도 같이 살다 갔으면 좋겠는데”라고 했지만, 그 소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리고 그 놈 살아 생전에 내 고향 통영에서 애비의 기념관을 세워준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면 그 놈이 또 한번 만세를 부를 뻔 했는데, 그것마저 끝내 보지 못하고 간 게 가슴 아프다.
내년 3월, 내 기념관을 개관할 예정이란‘통영 예술의 향기’쪽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개관이 앞으로 8개월 이상이나 남아 있는 시점인데도, 졸갑스런 성격의 이 늙은 애비는 벌써 기념관에 전시할 내 작가생활과 연극생활 60년에 걸친 흔적인, 개인 작품을 수록한 책을, 글을 발표한 월간지와 대형 액자로 만들 공연 사진과 포스터를, 그리고 글이 실린 교과서와, 내가 76년도에 미국으로 이민 올 때, 내 친구인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손진섭 사장이 석별의 표적으로 막대한 경비를 들여 14편의 내 동극작품으로 만들어 준‘노래가 있는 어린이 연극’여덟장의 L.P 자켓과 카셋트, 또 공연 기록이 담긴 50권이 넘는 앨범 등을 내 서재에서 꺼내어 12개 상자 분량의 자료를 거실에 쌓아 놓고 보니, 이제 내 글쓰는 방은 새 색시의 신방 같이 아담하고 깨끗하다.
그런데 내가 전시자료를 가려 내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추억이 물든 큰 놈의 사진이 있었다면 그건 그 놈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제 누나와 함께 아동극단 새들의 제4차 일본 공연 때 단복(유니폼)을 입고 다른 단원 친구들과 함께 호텔 난간에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진은 우리가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 해인 1975년에 공연한, 이 애비의 작품 강원도 산골 마을을 주제로 한‘밤 나무골의 영수’에서 영수 아버지 역인 엿장수로 분장한 그 놈의 사진이다. 그리고 내 기념관에 영구히 걸릴 사진인,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떠나던 그 해에 찍은, 그러니까 그 놈이 경신중학교 2학년 때에 찍은 가족 사진 속의 그의 모습이다.
세월은 가고 세월은 또 바뀌어, 계절 따라 꽃은 다시 피겠지! 하지만 이 애비의 기념관이 서기를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바랬던 그는, 이 애비의 기념관의 문이 열리는 그 날에 우리 가족 틈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10살부터 이 애비의 연극활동에 참여했고, 또 이 애비가 글 쓰는 작업을 어릴 적부터 가까이에서 지켜 보았을 뿐 아니라, 언제나 이 애비가 어린이들을 위해 힘을 기울여 온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내 기념관 벽에 걸릴 우리 가족사진 속의 그가, 수학여행 코스로 내 고향 통영의 명소 케이블카와 내 기념관을 찾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행렬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볼 것이 라고 이 애비는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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