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에게 가장 맘 편히 지냈던 때를 꼽으라면 대학교 시절 1년간 휴학하고 대만에 가서 중국어를 공부하던 기간이다. 당시 나는 동아시아학 전공으로 중국에 초점을 맞추어 공부하였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가서 외교학을 전공해 외교관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고 고국으로 돌아가 국제관계 분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고민도 했다.
중국에 대해 공부하면서 중국어를 좀 더 잘 배워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나 내가 공부하던 1970년대 말에는 미국과 중국이 아직 국교를 정상화하기 전이라 중국 본토에 갈 수 없었다. 대신 홍콩이나 대만을 가는 것이 차선책이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대학에는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을 외국에서 공부하는 “Junior Year Abroad” 프로그램이 있다. 3학년 과정을 외국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물론 학점을 취득하고 그에 상응하는 학비도 지불한다.
나의 경우에는 이런 3학년 과정을 외국에서 공부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그냥 일년을 휴학하면서 중국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학점 취득과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보건데 그런 스트레스가 있었다면 좀 더 공부에 열심이었을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마음에 아무런 부담없이 일년을 보낼 수 있었던 기회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전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도 접하며 배우는 귀한 시간이었다. 같은 동양권이라 여러가지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것도 많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영어를 가르치며 생활비도 벌어 보았고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과 사귐의 기회도 있었다. 아파트에서 방 하나를 구해 세들어 살면서 주인집 식구들과 사전도 뒤적거리고 손짓 발짓 해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손 빨래도 했었고 좋아하는 만두를 비롯한 여러가지 다른 음식들도 맛 보았다. 물갈이로 탈도 나 보았고 피부병도 앓았다. 그 곳 한국교민 사회의 모습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다른 정치, 사회, 교육 제도도 몸으로 느끼며 배워 보는 기회가 되었다.
사실 그래서 나도 우리집 애들에게 1년 정도는 외국에서 보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 오고 있다. 큰 애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도 2년째를 마쳐가고 있는 상황이라 어떨지 모르겠다. 그리고 작은 애도 가을이면 대학교 4학년생으로 대학원 진학 준비에 바빠 휴학하고 쉴 수 있는 입장은 아닌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두 애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만들어 보라고 한다. 직장생활을 몇 년 더 해본 후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하는 큰 애의 경우에도 학교로 돌아가기 바로 전에 일정기간 동안 쉬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본다. 그리고 작은애에게도 대학원이 결정된 후 일년 정도 입학을 늦출 수 있다면 그렇게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어 본다.
이렇게 대학 때 일년 정도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것과 비숫한 것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1년 정도 쉬는 것이 있다. 소위 “gap year”이라고 부르는데 대부분의 대학에서 허락을 한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해 계속 공부를 하는 것 보다 1년 정도 쉬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장래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확실히 추천할만하다. 내가 잘 아는 여학생 한 명은 아이비대학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고 진학을 1년 보류하기로 했다. 물론 진학예정 대학의 사전 승인하에서이다. 그리고 1년동안 콜로라도주의 스키장 근처의 식당에서 웨이츠레스로 일하며 시간이 나는대로 본인이 좋아하는 스키를 원없이 타 보았다고 한다. 물론 시간을 내어 평소에 학교 공부 때문에 읽지 못했던 책도 많이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쉬었던 1년이 이 학생의 발전을 1년 늦춘 것이 아니라 1년간 재충전을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더 큰 발전을 준비하는 도약의 기회가 되었다.
요즘처럼 정신없이 살고 있는 나의 생활을 보면서 30여년전 대학시절 1년간을 편한 마음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그냥 맘껏 해 볼 수 있었던 그 때가 너무 그리워진다. 지금도 가능하다면 다시 그렇게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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