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력한 대선 후보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안철수의 별명은 ‘간철수’다. 밥상을 차려줬는데도 밥은 먹지 않고 간만 본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박근혜와 필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인데도 대선을 4개월을 남짓 남겨둔 지금까지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주 한국 정치에 관한 자기 생각을 담은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을 펴냈다. 언론들은 이를 “사실상의 출마 선언”으로 분석했으나 그는 “언론이 그렇게 해석한다면 이는 존중돼야 한다”고 비껴갔다. 그가 23일 SBS의 ‘힐링 캠프’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출마를 선언하나 보다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켰으나 정작 프로에 나와서는 “국민이 원한다면 출마할 수도 있다”는 알쏭달쏭 한 말만 남겼다.
이 같은 그의 일련의 행보를 일각에서는 ‘출마 선언을 하지 않은 선거 유세’라 부르고 있다.
그의 이런 선택은 탁월한 판단일 수 있다. 출마를 하는 순간 시작될 검증과 정치 공세를 피해가면서도 몸값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끌다가 대선을 두 달쯤 남겨두고 출마 선언을 한 다음 민주당과 여론 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를 제의한다. 민주당은 거절할 명분이 없고 수용하면 안철수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극적인 단일화를 이룬 다음 여세를 몰아가면 지난 번 서울 시장 선거처럼 견고해 보이는 박근혜의 벽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일부에서는 그와 박근혜가 비슷한 지지도를 보이고 있지만 박근혜 표는 40%대에서 고정돼 있는 반면 그는 확장성이 크다며 안철수로 야권이 단일화 될 경우 그에게 부가 있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그가 대통령이 된 후 국민들의 열망을 충족시킬 만큼 성공적인 정치를 펼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불행히도 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의 현실 인식이다. ‘안철수의 생각’을 보면 여야를 모두 비판하면서 그 지지자를 모두 감싸 안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의 이런 마음가짐은 “A는 그렇지만 B는 이렇다”는 표현에 잘 나타나 있다. “제주 해군기지는 필요하지만 주민의 동의를 얻으려는 노력이 모자랐다” “햇볕정책은 남북 평화를 이룩하려는 시도였지만 절차가 투명하지 못했다” “천안함 사태는 정부 발표를 믿지만 국민들에 설명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 등등.
이렇게 양쪽을 모두 아우르려는 태도는 득표 전략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집권을 해 정책을 결정해야 할 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주 해군기지 문제만 해도 안철수 말대로 김영삼 정부 때부터 역대 4개 정권이 추진해 온 사업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진척되지 않은 것은 주민들이 아니라 외부 운동권의 조직적인 반대 캠페인 때문이었다. 국가의 이익이 걸린 사업을 일부 반대가 있다고 얼마나 더 설득하고 기다려야 하는가.
이런 양비론이 아닌 그의 주장은 현실성이 더 결여돼 있다. 그는 남북 관계 경색을 이명박 정부 책임으로 돌리고 금강산 관광의 즉각 재개를 주장하고 나섰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것은 이명박 정부가 강원도민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군이 관광을 간 한국인을 총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도 지금까지 사과도, 재발방지 약속도, 사건 규명을 위한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안철수도 믿는다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응답했다. 그런 상태에서 관광을 재개했다가 또 사상자가 나오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한미 FTA에 관한 그의 생각도 한심한 수준이다. 그는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라고 반드시 FTA를 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지금 대한민국이 무역을 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북한처럼 ‘우리 식대로 살자’인가. 그가 주장하는 복지 확대를 위해서도 경제 성장은 필수이고 현재로서는 교역확대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가 성공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조직적으로 지원해 줄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무슨 정책이건 국회가 법을 만들고 예산으로 지원해주지 않으면 공염불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국회는 새누리당이 장악하고 있고 제1 야당인 민주마저 그의 말을 100% 들어준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국회의원이나 장관, 당 대표는 그만 두고 지방자치 단체장 한 번 해 보지 않은 정치 경험 0의 그가 성공적으로 국정을 이끌 가능성은 역시 0라고 보는 것이 옳다. 올 연 말에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두고 봐야겠으나 안철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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