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부터 새로 시작한 오바마 진영의 TV광고는 이런 질문을 던지며 끝난다 : “미트 롬니가 숨기는 것은 무엇일까?”
“…롬니는 모든 절세 수법을 동원했다. 지난 2년 동안 4,300만 달러 소득에 대해 15% 미만의 세금만 낸 것은 그 자신도 인정했다. 여러분은 어떤 해엔 그가 전혀 세금을 내지 않은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 것이다. 우린 알 수가 없다. 롬니가 2010년 이전 것은 공개하지 않고 있으니”
광고는 지난 1월에 공개한 2010년과 2011년 것 외에 더 이상의 세금보고서 공개는 안하겠다고 버티는 롬니를 정면으로 공격하며 의혹의 여운을 강하게 남기고 있다.
억만장자 롬니의 세금보고가 다시 대선 캠페인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롬니의 스위스 비밀구좌와 조세피난처 케이먼 군도의 투자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오바마 진영이 “과거 세금보고 내역을 전면 공개하라”고 압박하자 다른 후보들만큼 했다고 받아친 롬니가 “그만하면 사람들이 내 재정에 관해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일축해 버린 것이다.
물론 존 매케인처럼 2년분만 공개한 후보도 있지만 상당수 역대 대선 후보들은 의혹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수년간의 세금내역을 기꺼이 공개했다. 롬니의 아버지 조지 롬니도 1968년 12년분을 공개했고 오바마는 7년, 밥 도울은 무려 30년분을 공개했었다.
롬니에게 더 이상의 세금보고서를 공개할 법적의무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 측면에선 그리 단순치 않다. 이미 롬니는 공개거부의 대가를 치르기 시작한 듯 보인다. 공화당 유력인사들도 앞 다투어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공개를 촉구했고 “왜 꺼리나”에 대한 구설수가 갈수록 무성해지고 있으며 온갖 절세법 동원으로 세금을 거의 안 낸 기간들이 있을 것이라는 세법 전문가들의 추측까지 나왔다.
“공개거부의 대가가 확실한데도 계속 거부하는 것은 공개했을 때 치러야할 대가가 더 크다고 계산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제한 한 공화당 전략가는 “공개할 때까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이슈다. 가능한 빨리 터트리고 넘어가는 것이 롬니에겐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7월은 롬니에겐 ‘잔인한 달’이다. 벌써 2주 넘게 진퇴양난, 코너로 몰리고 있다.
세금보고 문제만이 아니다. 지난 주 터진 롬니의 베인 캐피털 ‘소급 은퇴’ 구설수도 롬니에겐 변명조차 궁색한 난감 이슈다. 지금까지 롬니는 적자에 빠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을 구출하기위해 조직위원장으로 부임한 1999년, 자신이 설립한 투자자문회사 베인 캐피털을 떠났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증권거래위(SEC)에는 2002년까지도 롬니가 베인 캐피털의 회장이자 최고경영자, 단일 대주주로 등록되어 있었다고 지난 12일 보스턴 글로브지가 보도한 것이다.
베인 캐피털의 업무는 쉽게 말해 경영이 악화된 회사를 인수해 효율적 경영으로 살려놓는 것이다. 대량해고와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시키는 아웃소싱 등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일자리 창출’ 아닌 ‘부의 창출’이 베인 캐피털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롬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민간 비즈니스의 경험을 자신의 최고 자질로 강조해 왔다. 베인의 주업무가 아웃소싱으로 국내 근로자를 해고하고 그들의 삶과 커뮤니티를 황폐화시키는 기업사냥군의 이미지로 채색되자 그런 일은 자신이 베인을 떠난 1999년 이후에 행해졌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번 보도로 그 기간에도 그가 경영자로 등재되어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신이 난 오바마 팀은 롬니 주장이 맞다면 SEC에 허위 기록을 했으니 “중범”에 해당되고 SEC 기록이 맞다면 롬니가 유권자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롬니 진영의 대응은 빈약했다. ‘소급 은퇴’라는 기상천외의 용어를 동원해가며 이렇게 말했다. “베인을 떠난 후 복귀하지 않았다. 그리고 1999년 2월자로 소급해 은퇴하였다”
공개를 못 할 만큼 세금을 피해간 억만장자, 이윤을 위해 근로자의 삶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냉혹한 기업사냥꾼…이런 이미지의 광고가 왜 어필하고 있을까.
“유권자들이 후보를 잘 몰라서”라고 정치해설가 찰리 쿡은 분석한다. 사실 베인 캐피탈로 성공한 기업가이며 억만장자, 그리고 모르몬교도라는 사실 외에 일반 유권자들은 롬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롬니진영은 “경제가 나쁘다, 오바마 탓이다, 롬니가 살릴 수 있다”라고 강조할 뿐 왜 롬니를 신뢰할 수 있는지, 그의 철학과 비전은 무엇인지를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그 빈자리를 오바마 진영의 네거티브 광고가 채우고 있다고 쿡은 지적한다.
백악관의 새 주인을 원하는 유권자들에게 그 대안인 ‘롬니’를 긍정적으로 알려줄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롬니는 누구인가”가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정체성의 위기’에 빠진 셈이다.
세금보고 공개거부와 ‘소급 은퇴’라는 좋은 공격목표를 얻은 오바마 진영은 롬니의 최대자산인 ‘비즈니스 경험’을 궁색하게 변명하며 안고 가야할 ‘부담’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자칫 오바마의 ‘경제정책 실패’가 아닌 롬니의 ‘과거’가 2012년 대선을 가를 핫 이슈가 될 지도 모른다.
롬니에게도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다행히 아직 여론 지지율엔 변화가 없다. 부정적 여파가 더 확산되기 전에 롬니 진영이 적극 대응할 수 있다면 롬니 과거의 망령은 되살아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애매모호한 경제정책의 방향을 명확하게 정립하고, 빈약한 비전을 풍요롭게 보충하고, 상대진영의 네거티브 공세에 터프하게 맞서며 승세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아직 111일이나 남아 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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