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2천 수백여년 전 인류가 철학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이론이 등장했으나 100년 전까지 지식인들의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은 것은 ‘모든 사람이 골고루 잘 사는 사회’였다. 20세기 이전 거의 대부분의 사회는 소수가 다수를 착취해 소수만 잘 살고 대다수는 굶주리는 구조로 이뤄져 있었다. 만민평등의 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착취자 없이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양심 있는 지식인의 당연한 사명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인류 최초의 공산사회 건설을 위한 러시아 혁명은 이런 염원의 결실이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자 전 세계 지식인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인류 역사의 새 장이 열렸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 후 70년이 지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인류의 꿈이었던 공산사회도 붕괴하고 말았다. 동유럽 공산 정권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동독이 망하면서 서독에 흡수 통합됐다. 그리고 2년 뒤 공산 종주국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에서 공산당이 불법화되는 믿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공산주의가 공산 낙원 건설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 했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수용소 군도, 정치 쇼 재판, 비밀경찰, 24시간 사생활 감시, 고문, 반체제 인사 탄압 등 인간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는 체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비누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만성적인 흉작으로 배를 굶기는 체제에 국민들은 신물이 난 것이다.
공산 체제의 근본적인 결함은 인간은 자기 이익이 걸리지 않은 일에는 정성을 쏟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무시한 데 있다. 함께 일하고 똑같이 나눠 갖는다는 생각은 이상적이지만 실제로 이 제도를 시행하면 누구도 땀 흘리지 않는다. 적게 땀 흘릴수록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온갖 감시와 강제 장치가 동원되지만 인간 본성을 무시한 체제의 말로는 뻔하다. ‘정부는 돈을 주는 척 하고 우리는 일을 하는 척 한다’는 소련 근로자의 말이 현실인 것이다.
반면 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능력자를 우대하는 체제다.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든 사람이 시장을 장악하고 이윤을 차지한다. 이렇게 해 회사가 커지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고 승자 독식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누구나 이기기 위해 피를 말리는 경쟁을 하고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점점 더 좋은 제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컴퓨터와 스마트 폰이 그 좋은 예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탄생한 자본주의는 마르크스 말대로 “과거 인류가 상상하지 못했던 부”를 창출해냈다.
그러나 이런 자본주의도 완전한 체제는 아니다.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해질수록 패자는 늘어나기 마련이고 애초에 경쟁에 참여할 능력도 자본도 없는 사회적 약자도 있다.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체제에서 양극화는 심화되며 사회적 낙오자는 하루하루 희망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어떤 사회이건 보수와 진보가 모두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보수는 능력자가 우대받는 사회를 원한다. 유능한 생산자 없이 부는 창출되지 않으며 부가 창출되지 않는 사회는 가난할 수밖에 없다. 반면 진보의 기본적인 덕목은 약자에 대한 배려이다. 약자를 보살피지 않는 사회는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포장된 정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한국에서만은 지금까지 ‘진보’의 최고 가치는 북한의 김씨 왕조 변호, 인권 탄압과 핵무기에 대한 침묵, 한반도 평화의 버팀목인 한미동맹 파기와 주한 미군 철수, 한국 경제의 원동력인 재벌 해체와 징벌적 중과세 등 사회적 약자 배려와는 거리가 멀면서 한국의 앞날을 망치는 데는 특효가 있는 주장들이었다.
한국 ‘진보’의 중심축 통합진보당이 지난 주말 예상을 깨고 신당권파인 강기갑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신당권파는 북한에 대한 맹종과 한미동맹 파기, 주한 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건 구당권파와 결별하고 국민 정서에 맞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통진당이 이번 내분을 계기로 환골탈태 해 ‘능력자를 우대하면서도 약자를
배려하는‘ 이상적인 한국 사회 건설에 일조하기 바란다.
<민경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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