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폭염이 계속되는 여름날, 밖에 나가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다. 에어컨 켜진 실내에만 있고 싶다. 하지만 무기력한 채 컴퓨터나 TV 앞에서 주말을 보낸 후 월요일 출근길에 나서면 허무해질 것이다.
얼마 전 불볕더위 속에 맨하탄 타임스퀘어로 갔다. 아이가 뮤지컬 ‘북 오브 몰몬(The Book of Mormon)’을 보고 싶다고 하여 토요일 아침일찍 집을 나와 로터리(Lottery) 티켓에 응모하러갔다.아프리카에 몰몬 선교사로 간 두 청년의 이야기인 이 뮤지컬은 요즘 브로드웨이 최고 인기로 몇 달 후까지 티켓이 매진된 상태이다. 티켓 한장 가격이 200~300달러인 이 뮤지컬은 매일 공연 두시간 반 전에 로터리 티켓을 22장 내놓고 있다. 오후 2시 공연은 오전 11시반 응모 마감했다.
지하철을 타고 42가의 극장을 찾아가니 벌써 극장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저마다 종이에 이름을 써서 추첨함에 넣고 있었다. 1인당 2매까지 한 장당 32달러(현금)인 이 티켓은 객석 바로 앞좌석과 2층의 좌우 사이드 자리이다. 수백 명이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 극장 앞 도로를 지나 길 건너까지 모여 있을 즈음, 광대 분장을 한 배우가 나오더니 사람들을 웃겨가면서 추첨을 시작했다. 뽑힌 이름이 호명되면 당첨자의 기쁨의 비명이 터지고 환호성이 터졌다.
자신이 안되었어도 다른 사람의 행운에 박수치고 우우 소리 지르며 축하해주는 분위기가 남대문시장에서 산더미처럼 옷을 쌓아놓고 “단돈 1,000원, 골라! 골라!” 하며 신이 나서 박수치는 분위기였다. 한 장씩 추첨될 때마다 숨죽이고 소리 지르던 사람들은 마지막 번호까지 호명되자 미련없이 돌아서 갔다. 별로 아쉬워하지도 않고 말 그대로 잠시 ‘복권’ 그 자체를 즐긴 것뿐 이었다. 이날 당첨되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많이 웃고 많이 소리 질렀다. 그런데 한번 뮤지컬관람을 시도하고 보니 그날 평소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뮤지컬을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리키 마킨 보러가자”, “그 사람 게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래서 잘생기고 춤 잘 추며 ‘아이들을 위해 커밍아웃’ 한, 솔직하기까지 한 라틴계 미국 팝스타 리키 마틴이 출연하는 ‘에비타’(Evita) 공연장으로 갔다. 에비타는 빈민가 출신 여성으로 아르헨티나 영부인이 된 에바 페론의 극적인 삶을 다룬 뮤지컬이다. 한인들 귀에도 낯익은 노래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가 나온다.
리키 마틴은 쿠바 혁명의 상징인 체 게바라 역으로 나와 에바 페론을 냉소적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에비타 공연 티켓을 한 장에 38달러로 2장 살 수 있는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매일 아침 나오는 학생 표가 바로 매진된 것이다. 물론 제 값 주고 보려면 티켓을 구할 수 있지만 잠시 머물다 가는 관광객도 아니고, 브로드웨이 티켓을 얼마든지 싼 값으로 보는 방법을 아니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보기로 했다. ‘그냥 돌아다니자’며 거리로 나왔는데 배낭 매고 반바지 차림인 관광객, 뉴요커들은 뙤약볕 아래 얼굴이 벌겋게 익었어도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 사는 곳’ 같았다.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가끔 이곳에 나와야겠다 싶고, 심신이 여유로운 휴가를 가야겠다 싶었다. 불경기 속에 사는 한인들은 걱정이 많다. 쉬는 날 없이 가게 문을 열어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고 살고 있는 미국뿐 아니라 멀리 있는 한국 정치에도 관심이 많다. 이렇게 머리 복잡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배터리가 방전 되어 모든 것이, 삶 자체가 올 스톱 될 수도 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이번 여름에는 휴가를 가자. 일주일간 문을 닫는 게 무리라면 잠시 일 맡길 사람을 구해두고 며칠이라도 평소 가고 싶고, 하고 싶던 것을 해보자. 미국 정치는 오바마와 롬니에게, 한국 정치는 박근혜, 문재인 등에 맡기고 신선한 에너지로 충전하는 시간을 갖자.
요즘처럼 살기 힘든 시기에 불운을 극복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TV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차승원(독고진역)과 공효진(구애정역)이 유행시킨 단어가 생각난다. “충전!,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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