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박근혜가 대통령 출마를, 정몽준, 이재오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은 사실상 끝났다. 김문수가 출마여부를 막판까지 고심하고 있는 중으로 알려졌으나 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본인 말고는 별로 없다. 하든 안 하든 결과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독주가 장기간 계속되면서 새누리당의 경선은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박근혜 혼자 40%대의 지지를 받고 있을 뿐 나머지 후보들은 1~2%선에 턱걸이하기도 힘들다. 이래 가지고야 그야말로 게임이 안 된다.
정몽준과 이재오는 자신들의 주장인 완전 국민 경선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은 흥행에 실패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흥행에 관한 김을 완전히 빼기 위해 자신들은 나오지 않겠다는 것이다. 철부지 어린 아이도 웃을 이런 논리를 이유라고 내세우는 이들의 처지가 딱 하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완전 국민 경선으로 뽑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이들과 이들 친족 몇몇 말고는 없다. 완전 국민 경선이 그렇게 좋은 것이면 지난 번 대선, 그 이전 대선 등 과거 수많은 대선 때는 왜 가만히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들의 주장은 현 상태에서는 도저히 당선 가능성이 없는 자들의 판 흔들기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정몽준은 “정직하고 역사를 두려워하는 새누리당을 만들기 위해 불출마를 결심했다”며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낯이 두꺼운 사람이다.
국민들이 그가 정치인으로서 한 일 가운데 기억하고 있는 것은 2002년 대선 때 지금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정치색이 매우 다른 노무현 후보와 공동 정부 구성을 위한 연대를 했다 선거 하루 전날 이를 일방적으로 깨 그에게 동정 몰표가 가 당선 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 밖에는 없다. 그리고는 2007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 후 지금까지 그가 왜 노무현과 연대했으며 왜 이를 파기했으며 이런 정치적 배신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국민들에게 분명히 밝힌 적이 없다. 정직하고 역사를 두려워하는 인간이라면 이럴 수는 없다. 참으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사람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가운데 감옥에 갔거나 아직 갈 예정이 아닌 거의 유일한 인물인 이재오는 “박정희는 독재자”란 매우 새로운 주장을 펴며 그것이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유일한 이유로 내세웠다. 자신은 박정희의 자식이 아닌 반면 박근혜는 그 자식이기 때문에 자식이 아닌 자신이 대통령 적격자라는 논리다. 아버지의 죄를 자식에게 묻는 연좌제가 대한민국에서 폐지됐다는 설은 낭설이었던 모양이다.
독재자 박정희와 그 딸 박근혜가 국민들 사이에 아직까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의 지식인들을 분노케 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18년 집권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하고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짓밟고 쿠데타와 친일을 하고 배신을 밥 먹듯 한 그가 항상 여론 조사에서 국민이 존경하는 지도자 1위로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박정희 이전까지 국민 대다수가 세끼 밥 먹기 힘들었지만 박정희 이후에는 대다수가 밥걱정은 하지 않게 됐다는 사실이 이와 약간 관계가 있다는 점은 보이지 않는다. 박정희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워낙 똑똑한 한국 국민들은 지금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룩했을 것이고 밥그릇이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인권과 민주주의에 우선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면서도 민주 항쟁 없이 한국에 민주주의가 저절로 찾아왔으리란 소리는 절대 안 한다.
밥벌이의 무서움을 아는 서민들일수록 보수 성향을 보인다는 여론 조사도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의 이런 한가한 현실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에 대한 높은 지지율 뒤에는 박정희 때처럼 밥을 먹여 달라는 많은 서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박근혜가 과연 대통령이 될 수 있을 지, 되어서 이런 염원에 보답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지만 ‘박근혜=박정희’라는 구호만으로 이번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야권의 판단은 오판일 가능성이 크다.
<민경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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