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에 성공한 예가 없다. ‘정권 재창출’이란 말은 이제는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니콜라 사르코지가 낙마했다. 프랑스뿐이 아니다. 유럽의 집권 정치 지도자들이 11명이나 줄줄이 선거에서 패배했다.
유권자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킨 것 같다. ‘무조건 갈아보자’가 대세다. 일종의 세계적 현상이다. 그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나. ‘무어의 법칙’에서 그 한 단초가 찾아지는 것은 아닐까.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의 주장이다.
마이크로 칩의 정보처리 용량은 18~24개월마다 2배가 된다. 인텔의 공동창업주 고든 무어가 내놓은 법칙이다. 이 법칙에 착안했다. 그러면서 그가 제시한 가설은 페이스 북이나 트위터 이용자가 새로 1억 명씩 늘어날 때 마다 정치 지도력의 질적 수준은 저하된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로 대변되는 시대다. 이 시대에 정치 지도자와 대중 간의 대화는 본질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위에서 아래라는 일방 대화에서 위에서 아래, 또 아래에서 위로의 쌍방 형 대화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많은 긍정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보다 많은 참여, 투명성 확보, 혁신 등이 그것이다. 때문에 특히 강조되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포용과 소통능력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를 읽고 또 읽는다. 트위터와 페이스 북의 메시지를 면밀히 뒤쫓는다. 그러다 보니까 정치지도자는 사람들이 가야할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만 가게 된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대중영합주의(populism)다. 대중영합주의야말로 요즘시대의 최고 이데올로기가 돼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새누리당 유력 대선주자 박근혜가 공식적인 대선출마 선언과 함께 대권을 향한 본격적 행보에 나섰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의 출마 선언이 그 출발점으로 선거 캠프 명단도 발표함으로써 그동안 베일에 가렸던 ‘박근혜 사람들’의 면면도 공개됐다.
힘든 길을 걸어왔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전당대회 현장투표에서 이겼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뒤집어져 대선의 꿈을 접었다. 그 자체가 ‘트라우마’(trauma)라면 트라우마였다.
박근혜는 또 다시 사선(死線)에 선다. 4.11 총선이다.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4.11 총선은 말하자면 새누리당의 사실상의 대선후보 경선이었다.
아름다운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다. 박근혜에 따라 붙는 수식어다. 그리고 이후 각급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면 박근혜는 무난히 대선에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보수진영으로만 눈을 돌릴 때 대세는 박근혜다. 결국은 보수 대 진보의 한 판 대결이다. 그러니 보수성향의 표는 갈 데가 없다. 게다가 정권재창출을 위한 카드로 박근혜 만한 카드가 없다. 박근혜 진영의 판단이고 보수 쪽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전체 유권자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42.8%의 득표율을 보였다. 야권의 득표율은 46.7%. 게다가 수도권에서는 크게 졌다. 지난 총선 투표율은 54%였다. 대선 투표율은 통상 65%선이다. 보이지 않는 10% 이상의 표가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
총선효과는 이제 사라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 박근혜에게 요구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변신의 몸짓이다. 그러나 정황은 정반대다.
‘선수가 룰에 맞추어야한다-. 박근혜의 이 한마디 말로 비(非)박 주자들의 오픈 프라이머리 요구는 일축됐다. 오는 8월19일, 그러니까 런던 올림픽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행 룰대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뽑기로 확정된 것이다. 경선의 흥행 측면은 완전히 무시됐다. ‘선거는 바람’이라는 한국 정치의 역동성도 전혀 고려치 않은 것이다.
‘오픈 프라이머리제도를 도입하자’는 비박 주자들의 제의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과 경선 룰을 논의하는 자리를 한번이라도 갖는 제스처라고 보여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 불통의 자세는 당내 경쟁세력을 끌어 앉고 함께 가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반증으로 밖에 달리 해석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의 아름다운 원칙과 소신이 독선과 불통의 인물로 만들고 있다.” 요즘 들어 여기저기서 나오는 소리다. 비박 주자들의 볼 멘 소리가 아니다. 박근혜의 우군(友軍)이랄 수 있는 보수 언론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또 이런 소리도 들린다. “박근혜 의원이 한 번 결정을 내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주변에는 그의 결정대로 움직이는 사람들만 있지 잘못을 간언하는 사람은 곁에 남지 못한다.” 여권의 킹메이커로 알려진 한 원로 정치인의 지적은 더 날카롭다. “박 의원에게는 ‘내가 말하면 끝이다’라는 ‘규정자 의식’이 있는 것 같다. 이는 결코 민주적 리더십의 면모가 아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여의도 출입 정치부 기자들을 상대로 한 여론 조사에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로 박 의원이 35.6%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박의원의 불통 이미지 때문이다. 이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제 팡파르는 울려 퍼졌다. 박근혜 진영의 청와대를 향한 진군나팔소리다. 그 모습이 그런데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옥세철/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