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 활동을 하다보면 목회자들에게 가장 기쁜 경우가 둘이 있다. 하나는 예배와 교회생활에 성도간의 은혜가 넘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그들로 인하여 하느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일들이 삶 속에서 공동체 간에 공유되어질 때이다. 이럴 때에 목회자들은 사목의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김영실 님이란 분이 성프란시스에 출석한지 3년이 되어간다. 몇 해 전 이웃 보림사의 주지 경암 스님(동양화가)을 모시고 사군자를 배울 때에 알게 된 분이다. 평소에 말이 없고 묵묵하고 인덕이 그 얼굴과 품행에 그득히 배겨 있는 분이라 생각했다. 8주간의 과정을 다 마치고 이십여 명의 수련자들은 아쉬운 이별의 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었다. 한 주일 아침 일찍 나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김영실입니다. 오늘 교회에 나가보려고 하는데요.” 낯익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웠고 반갑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다시 뵙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분과 성프란시스는 벗이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어찌 알았으랴. 장차 이 분이 예수님과 벗이 되어 그의 제자가 되리라고 하는 것을….
머지않아 나는 그분의 집을 심방했다. 그 집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동양박물관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벽마다 동양화가 걸려있고 구석구석마다 도자기들이 진열되어 있다. 아래층에 내려가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삼면 벽이 다 도자기들로 메워져 있었다. 그리고는 곧 알게 되었다. 이분은 집 뒤뜰에 불가마까지 만들어놓고 도자기를 굽는 도예가요, 한의사요, 동양화가요, 또한 40년간 좌선을 해온 도인이라는 사실을. 그 때 나는 첫 느낌으로 알았다. 어설픈 복음제시 가지고는 통하지도 않을 분인 것을.
예수 믿으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 집 가구 사이에 틈틈이 끼여 있는 불상들도 우상이니 뭐니 치워야 한다는 말 따위는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이 분이 벗하여 온 인생길의 자화상이 담긴 소중한 거울이기 때문이다.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넌 후 그 뗏목과 함께 한 시간이 정들어 뭍에 오른 후에도 차마 버리지 못하여 등에 업고 걸으려고 하니 도저히 무거워 더 이상 업고 갈 수 없고, 또 뭍에서는 뗏목이 필요치 않으니 스스로 내려놓는 자각적 깨달음이 먼저 동반되어야 하겠기에.
교회생활을 시작한 지 일 년 반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더니 이 분이 ‘도요속 영혼의 미로’라는 제목의 시집 한 권을 냈다. 그 시집을 읽으면서 이 분의 영혼이 새로운 그 어떤 온유하면서도 강한 기운에 의하여 만져지고 있는 듯한 흔적들이 보였다. 짜장면 조리법을 알아서 짜장면이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짜장면을 먹어보면 짜장면이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도 같은 이치인 것인가? 이 분은 성프란시스 식구들과의 예배와 친교를 통해서 생활과 예술 속에서 운행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총의 손길을 맛본 것이다.
그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영실님의 외조부께서는 도산 안창호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셨고, 영실님은 이미 어린 시절 장로교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주일학교에서 성경 교사로 봉사한 경력까지 있는 분이었다. 그 후 어떤 계기로 교회를 수십 해 동안 떠나 있었지만 한번 인치심 받은 세례의 효력이 어디로 갔겠는가? 그 세례의 효력은 성프란시스라는 채널을 통해 다시금 그의 정체성을 재정비하게 하셨고 급기야 작년 12월 15일에 견진성사를 받음으로 신앙고백을 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그 후 도자기를 굽는 손으로 찬송가도 피아노로 치고 싶다 하여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였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위대하신 하느님의 경륜과 조화를 통해 이루어내신 솜씨인가?
내 사목의 기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 주에 영실님은 9년간 태극권을 열심히 연마한 열매를 얻어내었다. 블랙 벨트를 따낸 것이다. 누가 인생 70이면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말했던가? 70대에 시집 내고, 견진 받고, 피아노 시작하고, 검은 띠 따내서 수련생들 가르치는 자격증까지 거머쥔 이 분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영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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