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얼린 제작가로 세계 정상에 오른 김옥겸씨
▶ 소리보다 모양이 중요… 한 대 만드는데 꼬박 두 달 걸려
자신이 제작한 바이얼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옥겸씨. 바이얼린 한 대를 만드는 데는 꼬박 두 달이 걸린다고 한다. <장지훈 기자>
김옥겸(38)씨는 바이얼린 제작가다. 한국 사람으로는 매우 드문 분야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데, 이 길로 들어선지 10년도 안 돼 세계정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2000년 바이얼린 만드는 법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그는 2006년 미국 바이얼린제작협회 대회에서 3등을 차지했고, 2007년 권위 있는 현악 전문잡지‘스트라드’가 주목할 차세대 제작자로 소개했으며, 2008년 멕시코 국제 바이얼린제작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 모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2009년 그의 비올라가 이탈리아 크레모나 현악기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 것이다. 크레모나(Cremona)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델 제수를 비롯한 수많은 명기들이 제작된 현악기의 성지로, 이곳에서 3년에 한번 열리는 현악기대회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장인, 명인들이 모두 승부를 거는 현악기의 올림픽으로 유명하다. 올해 9월 크레모나 대회에 다시 한 번 도전한다는 김옥겸씨를 인터뷰했다. 애틀랜타에서 활동하다가 4개월 전 LA로 이주한 김씨는“날씨와 환경이 좋고 음악가들도 많은 LA에서 내가 가진 꿈을 실현해 나갈 것”이라며 새로운 도전의 날개를 펼쳐보였다.
<정숙희 기자>
호주·이탈리아 거쳐 입문 10년만에 국제대회 잇단 수상
세리토스에 정착“제작기술 전수 위해 클래스 오픈”
김옥겸씨가 바이얼린에 매료된 건 그다지 우연은 아니다. 원래 피아노를 공부했던 그는 음악을 무척 좋아했지만 욕심과 노력만으로 좋은 피아니스트가 될 수는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전혀 다른 분야인 마케팅을 공부하러 1998년 호주로 건너갔다. 2000년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한 단원과 악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근에 바이얼린 제작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 학창시절 한국 최초의 바이얼린 제작자 이주호 선생에 대한 기사를 읽고 가졌던 막연한 동경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악기 공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단계의 악기, 나무, 도구들을 봤을 때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그 순간 모든 것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그 제작가는 너무 바빠서 가르쳐줄 수가 없다고 했다. 배움에 목마른 그는 혼자서라도 만들어보겠다고 책을 사서 독학하고 목재소를 찾아가는 등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이상 세월을 허비하다가 “이건 아니다,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제작가를 찾아 나섰고, 2001년 멜버른에서 이탈리아계 스승 마리오 시다를 만났다.
1년 정도 배웠을 때 선생은 일취월장하는 그에게 “더 배우려면 이탈리아로 가라”고 했다. 크레모나의 ‘스트라디바리 국제 바이얼린 메이킹 스쿨’은 5년제 대학인데 그는 성실하게 공부하며 준비한 덕에 3학년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 곳서 얼마나 열심히 배우고 공부했을지는 안 봐도 훤하다. 그는 졸업 전부터 일자리를 얻었고, 2006년 졸업하자마자 세계 최고의 현악기 전문 상점인 브루스 칼슨 & 뉴만 웍샵에 취직됐다. 들어가는 것만도 큰 영광이라 다들 부러워했던 그 샵을 그런데 김씨는 6개월 만에 떠나게 된다.
“제가 욕심이 좀 많아요. 미국 현악기 전문점에서 스카웃 오퍼를 받고 나니까 이탈리아가 작은 거에요. 아내도 답답해하고, 마침 미국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도 할 겸 그냥 떠나왔습니다”
그 대회에서 3등을 하자 오퍼도 달라졌다. 애틀랜타의 허스메이커(Huthmaker) 바이얼린 샵에 들어간 김씨는 거기서 4년 동안 일하면서 주요 대회 입상경력을 쌓았고 업계에서 명성도 얻게 됐다. 그러나 그는 그 곳을 떠나 LA에 왔다.
“저는 순수 제작가입니다. 대개 현악기 제작가들은 먹고 살기 위해 악기 거래상을 겸하는 게 현실이지만 악기샵 운영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었어요. 허스메이커에서 계약이 끝났을 때 파트너로 일하자는 좋은 오퍼를 받았지만 길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돈은 벌겠지만 내 길이 아닌 것을 가면 언젠가는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떠나 왔어요”
어디로 갈까-뉴욕, 시카고 등 음악인들이 많은 대도시를 돌아보던 중 5년 전 여행했던 LA에 좋은 기억이 있어서 세리토스에 정착했다. 꿈꿔오던 자신만의 현악기 공방을 열고 바이얼린을 만들기 시작한 지 넉 달째, 벌써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된다. 특히 제작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클래스를 오픈했다. 애틀랜타에서도 6명의 제자를 배출했다는 그는 오전반(월·수)과 오후반(화·목) 2개의 클래스를 열고 소수 정예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제야 꿈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미국이 어떤 곳인지도 알게 됐고, 내 분야에서 마음껏 활동할 곳을 찾았으니까요. 내 이름이 새겨진 최고의 바이얼린을 만들고, 그 작품들이 훌륭한 음악가들의 손에 들려져 세계 곳곳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 그것이 필생의 꿈입니다”
문의 (562)229-4183, www.okkyumviolin.com
김옥겸씨에게 평소 바이얼린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던 것들을 질문했다. 의외의 답변이 많아서 흥미로웠고 공부도 많이 한 인터뷰였다.
-바이얼린 제작에서 중요한 것은 소리인가 모양인가?
▲전적으로 모양이다. 우리는 소리는 염두에 두지 않으며, 아름다운 모양의 악기를 만드는 데만 최선을 다한다.
-바이얼린의 기능이 연주인데 소리가 중요하지 않다니?
▲소리는 극히 주관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날카로운 음색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하는 등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떤 대회는 심사기준에 소리를 포함시키지도 않는다. 크레모나 대회는 소리와 모양을 반반씩 평가한다.
-바이얼린 모양은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모양이 소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 아닌가?
▲바이얼린 모양은 1600년대 스트라디바리가 아름답고 완벽하게 완성시켰다. 현악기는 나무의 재질과 두께, 홀의 위치와 간격 등 모든 요소가 소리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큰 것은 아니다.
-바이얼린은 어떤 나무로 만드나?
▲뒷면과 옆면, 목 부분은 단풍나무로 만들고 유고슬라비아 단풍을 최고로 친다. 앞면은 전나무로 만드는데 북이탈리아 알프스에서 자란 전나무가 최상품이다. 무늬가 예쁘고 단단하면서 조직이 찰진 나무가 좋다.
-제작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기에 옷을 입히는 칠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힘든 부분이며 계속 연구하는 부분으로서, 친한 사람끼리도 서로 비밀이다. 마지막 단계의 칠이야말로 악기의 매력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기술로서 따뜻함과 부드러움과 투명함을 가진 칠을 최고로 친다.
-젊은 사람이 바이얼린 제작 명인이 될 수 있나?
▲사실은 젊은 사람들이 잘 만든다. 대회 우승자 연령대도 30대에서 40대 초까지다. 이유는 고도의 정신집중과 육체적 힘이 많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무 파고 깎을 때는 절제된 팔의 힘이 굉장히 중요하다. 바이얼린 제작은 재능과 경험보다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고, 예술이라기보다 기술이다.
-바이얼린 한 대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나, 또 가격은?
▲꼬박 두 달 정도 걸리고, 1만2,000달러에서 1만5,000달러 정도 받는다.
-이제껏 얼마나 많은 현악기를 만들었나?
▲100대 정도 만들었다. 초창기엔 내가 만들고도 내 이름을 쓰지 못했다.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한국사람 것은 잘 안 팔리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음악가들이 절대 안 산다. 미국에 와서야 내 이름을 쓰게 됐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델 제수가 과연 최고인가
▲솔직히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제작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얼마 전 인디애나 음대에서 20명의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깜깜한 방에서 스트라디바리와 현대에 만든 악기를 연주하게 한 다음 평가했더니 현대의 악기가 높은 점수를 얻었다. 물론 좋은 소리를 내는 스트라디바리도 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 그 옛날의 상황과 기술력을 감안하면 정말 잘 만든 악기지만 사실 지금 더 잘 만든 악기들이 많다. 스트라디의 신화는 희소성과 역사성, 고정관념 그런 것이 작용한 탓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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