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서 컴퓨터를 거의 켜지 않는다. 태블릿 PC 때문이다. 웹서핑, 이메일, 영화, 음악, 책, 게임 등 웬만한 것은 태블릿으로 다 할 수 있으니 방안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데스크톱 컴퓨터와 노트북은 이제 찬밥 신세가 되어 먼지만 쌓이고 있다.
침대나 소파 위에 편안히 누워 태블릿으로 책을 읽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태블릿과 함께 현대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스마트폰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부부나 연인이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마주보고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풍경이 낯설지가 않다.
탑승자 대부분이 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스마트폰 화면을 쳐보다는 게 요즘 서울의 지하철 풍경이라고 한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 기기’가 확산되면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한 지인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온 9학년 아들에게 상으로 스마트폰을 사주고 나서부터 아이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다고 한숨을 짓는다. 시간만 나면 자기 방에 틀어박혀 스마트폰을 벗 삼아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과 텍스팅을 하면서 말이다.
어른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한 모바일 보안업체가 스마트폰을 보유한 미국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8%가 매 시간 전화기를 확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34세 연령층의 경우 68%가 매시간 전화기를 체크하며 39%는 화장실에서도, 30%는 다른 사람과 식사 중에도 전화기 화면을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심지어 24%는 불법인줄 알면서 운전 중에도 스마트폰을 체크한다고 답변했다. 글로벌 시대, 스마트 시대를 맞아 스마트폰은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 되었지만 스마트폰 때문에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사례가 속출한다면 스마트폰이 무조건 좋은 물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을 앞에 두고 상대에 집중하지 않고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다 핀잔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을 했다. 얼마 전 나보다 나이가 10살은 더 많은 지인을 식당에서 만났는데 몸이 근질거려서인지 상대를 앞에 두고 스마트폰으로 잠시 웹서핑을 하는 매너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런 나에게 돌아온 것은 “전화기 화면은 혼자 있을 때 많이 들여다봐라. 그거 잠깐 안한다고 뭐가 어떻게 되니”라는 점잖은 핀잔이었다.
내가 같은 이유로 10년을 알고 지내온 후배에게 훈계를 한 적도 있다. 커피숍에서 나를 앞에 두고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카톡을 하는 상대방의 모습에 확 짜증이 난 것이었다. 스마트폰의 역사는 5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기계가 어느 덧 사람과 말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기에 이르렀다.
아이폰에 탑재된 음성인식 개인비서 ‘시리’(Siri)의 한국어 테스트용 버전을 다운받아 사용한 얼리 어댑터들이 올린 후기들이 사이버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시리가 탑재된 아이폰에 대고 “사랑해”라고 말하면 “우리 그럴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아시잖아요”라고 대답하고 “피곤해”라고 하면 “운전 중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라고 걱정을 해준다.
재차 “피곤해”라고 말하면 “주인님, 제 말 잘 들으세요. 아이폰 내려놓고 잠시 주무세요.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는 기절초풍할 답변이 돌아온다.
시리 같은 음성인식 기술로 인해 몇 년 뒤엔 키보드 두드릴 필요 없이 인터넷 검색도, 이메일도, 문서 작성도 모두 말로 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한다. TV와 비디오 게임, 냉장고, 세탁기 조작도 말로 하는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기계가 점점 사람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시간이 절약되고 생활은 더 편해지겠지만 기계와 친해질수록 사람은 멀어지기 때문이다. 태블릿과 스마트폰 없이 하루도 못 사는 ‘스마트 족’ 이라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다음 질문에 답해볼 것을 권한다. 기계와 사람 중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구성훈 특집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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