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 지역 영화관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상영할 때 우리 부부는 한국 전쟁 영화를 미국에서 상영하는데 당연히 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마음으로 관람했었다. 그런데 어찌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서 나왔다. 그리고 한국에 계신 시어머님께 전화를 했다. “어머니! 오늘 영화를 봤는데 그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의 아버님 어머님 모습을 본 것 같아서 애비하고 많이 울었어요.”
시 아버님은 상이용사이셨다. 철원 고지 전투에서 폭격에 맞아 대장을 많이 잘라냈고, 그물처럼 얽힌 흉터 투성이의 다리는 약간씩 저셨다. 전쟁이 끝난 후 20대 젊은 청년이 목발 짚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돌아와 낳은 첫 아들이 내 남편이란다. 그런 몸으로 가난한 살림을 일으켜 보려고 열심히 사셨단다.
딸기, 참외, 담배 등 특수작물을 재배하며 그 시절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시도했지만 꿈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시다가 사십 중반의 젊은 나이에 돌아 가시어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하셨다. 공산군이 투하한 포탄의 파편 조각이 온 몸에 박힌 중에 간에 박힌 파편을 다 제거하지 못해 남았던 것이 긴 세월 염증을 일으키며 곪은 것이 사인이었다.
전쟁은 그것을 겪지 않은 우리에게는 막연한 옛 이야기였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 ‘상이용사’라는 단어의 진정한 아픔의 의미를 몰랐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고인이 되신 청년 아버지의 피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상상도 못한 사선을 넘는 두려움, 절규, 그리움.... 청년 아버지가 영화 속에서 오열하며 울고 있었다.
그 피 값으로 우리 어머님은 노년에 정부로부터 생활비를 받으신다. 나는 가끔 어머님께 장난삼아 “우리 어머니는 시집 잘 와서 남편이 돌아가신 후에도 아내 생활비 준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곤 하였다. “피 흘림의 댓 가” 라는 아픈 의미를 내 어찌 알기나 했던가! 이민 초기 세탁소에서 일할 때 미국 할아버지들이 내게 코리언이냐고 묻고 자기가 한국 전쟁에 갔었다고 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참전 용사 노인들을 만났다. 그 중 어떤 분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혼기를 놓치고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송구스러워 빚진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했다. 우리 중 누가 나는 다른 이에게 빚진 것이 없노라고 뻔뻔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 혼자 힘으로 이만큼 산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내가 자주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 ‘평범한 행복’을 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 흘림이 있었던가!
전쟁은 끝났고 모든 이들이 평화 시대를 살았지만 시아버님은 계속 그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리고 24년 후 전쟁이 발발했던 그 날인 6월 25일 새벽, 세브란스 병원에서 돌아 가셨다. 그 분이 흘린 숭고한 피가 가족과 나라를 살렸다. 오늘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죽을 명분이 있는가? 예수님은 죽기 위해 태어나셨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온 인류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그 예수님의 뒤를 쫓아, 교회 역사는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계12:11) 아니한 사람들이 이야기로 가득하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주인공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던지는 모습이 우리를 눈이 퉁퉁 붓도록 울게 한 것이 아닌가! 존 패튼(1824-1907)은 스코틀랜들에서 인도네시아의 뉴헤브리디스 군도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가 들어가기 20년 전에 두 선교사가 식인종들에게 잡혀 먹힌 지역이었다. 한 노신사가 울며 만류했다“ 식인종이 있다니까요. 목사님도 잡아 먹을 거라구요” 존 패튼이 대답했다.
“딕슨씨, 머지않아 우리 모두는 모든 것을 남겨 둔 채 무덤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벌레들이 주검을 뜯어 먹겠지요. 주님만 섬기다가 죽는다면 벌레가 먹든 식인종이 먹든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깨끗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겁니다. 그는 그곳에서 아내와 어린 아들을 맨손으로 땅을 파서 묻어야 했고 수 년 후 복음은 열매를 맺어 많은 식인종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되었다.
누군가가 죽어 피 흘렸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전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 흘림 위에 세워진 조국! 그 조국이 있기에 오늘 나의 기적 같은 평범한 삶이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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