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연방대법원의 애리조나 이민법 관련 판결이 나왔을 때 미디어의 첫 반응은 ‘혼란’이었다. - 도대체 어느 쪽이 이긴 거야?
애리조나 주의 초강경 이민단속법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가 제기한 소송을 심리해 온 대법원에서 나온 최종 결론이 법조항 중 일부는 위헌, 일부는 합헌으로 규정한 이른바 부분판결(split decision)이었기 때문이다.
법정기자들의 트위터를 통해 조크 담긴 1보들이 퍼져나갔을 때, 온라인 미디어 ‘폴리티코’가 그중 제일 재미있는 트윗 10가지를 선정했는데 맨 위에 이런 내용이 올랐다 : “내 아이들이 다투면 난 서로의 주장 중 일부는 맞다고, 일부는 틀렸다고 정리해준다”
애리조나 이민법은 목표부터가 가혹하고 비인도적이다. “시행 통한 소모(attrition through enforcement)”, 단속을 강화하여 일상이 비참해진 불법체류자가 스스로 떠나게 하여 없애자는 작전이다.
이런 목표달성을 위한 4가지 법조항이 쟁점이었고 대법원은 이중 3가지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폐기되었기에 망정이지 이민자들에게 애리조나는 기본권이 위협받는 ‘경찰국가’가 될 뻔 했다. 합법신분 증명서류를 늘 지참하지 않는 것은 ‘범죄’ - 제시하라는 순간 내놓지 못하면 추방에 앞서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뜻이다. 불체자의 취업과 구직 역시 ‘범죄’로 규정하고, 불법체류가 의심되는 이민자를 지역 경찰이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할 수 있는 권한까지 허용한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내용들이다.
이민정책은 주정부가 아닌 연방정부의 소관이며 연방법은 주법에 우선한다는 헌법에 의거해 위의 3개 조항을 위헌으로 내친 판결문에서 앤소니 케네디 대법관은 이렇게 지적했다. “이동 가능한 외국인이 미국에 체류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적절한 서류를 못 갖추었더라도 여기서 일하고 사는 불법이민이 범죄자는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살아남은 한 조항은 “show your papers(서류 보여주시요)”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미디어의 조명을 가장 많이 받은 쟁점이었다. 경찰이 다른 법 위반으로 정지?체포?구금한 사람에 대해 불법체류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경우, 합법신분증거 제시를 요구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 조항이 시행될 때 까지는 연방법과 상충한다고 추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무효화시키기엔 이르다는 논리에 진보대법관들까지 모두 동의, 만장일치로 인정한 것이다.
이 조항은 누가보아도 피부색에 따른 편견수사인 인종프로파일링의 소지가 다분하다. 영국계 백인 불법이민과 히스패닉 시민권자가 교통위반으로 걸렸을 경우 경찰은 누구에게 불법체류 같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것인가. 이번 재판에선 제소 당시부터 인종차별에 의한 민권 침해요소는 거론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이민단체에서 제기한 민권침해 소송이 제기된 상태이며 앞으로 “서류 보여주시오” 시행과 함께 관련소송은 봇물을 이룰 것이다.
상당수 법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은 완벽하진 못해도 확실하게 행정부의 승리라고 해석한다. 경찰의 불법이민 검문권을 인정하긴 했지만 전적인 지지가 아니라 시행을 지켜보겠다는 여지를 남겼고 앞으로 연방민권법 침해 소송으로 폐기될 위험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시각은 다르다. 애리조나 이민법의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가 자신들의 승리를 주장한다. 제각기 근거도 있으니 양쪽 모두 ‘절반의 승리’다. 잰 브루어 애리조나 주지사는 핵심요소인 “이 법의 심장”이 살아남았다면서 “법치의 승리”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민주당과 이민단체들도 “애리조나법이 위헌임이 명백해진 한 우리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오바마는 주요조항 위헌판정은 기쁘지만 경찰검문의 민권침해는 우려된다면서 친이민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할 수 있었지만 롬니의 입장은 난감한 게 역력하다. 대법원 판결은 “이민은 연방 소관”임을 재확인시켰는데 롬니의 반응은 “각 주엔 국경을 보호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라니…하긴 애리조나 이민법은 전국의 ‘모범’이라고 찬사를 바치며 일맥상통하는 ‘자진추방’을 개혁 아이디어로 제시한 롬니로서는 요즘 갑자기 친이민으로 선회하자니 ‘혼란’스럽긴 하겠다.
민주당은 오바마를 지지하는 히스패닉 표밭이 확실하게 동원되어 경합주의 판세를 결정지을 것이라며 희망에 부풀었고 공화당은 몇 달 후 선거 무렵엔 경제 이슈에 밀려 퇴색해 버릴 것을 기도하고 있다.
금년 선거에서의 ‘이민’은 큰 이슈가 아니었다. 경제에 치여 관심도 못 끌었다. 그러다 오바마의 깜짝 불체청소년 구제조치와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갑자기 뉴스 조명권에 들어선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이민사회가 ‘절반의 승리’라도 얻은 것은 애리조나 주법에 비해 친이민적인 연방법 덕분이다. 앞으로도 연방법에 행여 반이민 입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친이민 토양을 다져야 한다. 반이민 강경세력이 백악관과 의회…워싱턴을 장악한다면 이민개혁법의 방향이 불체자의 ‘신분합법화’ 대신 ‘자진추방’으로 치닫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까지 일상에서 인종 프로파일링을 감수하며 살아야 할 지 모른다. 연방하원에서 불체자를 중범으로 기소하자는 공화법안이 상정된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이민’이 ‘경제’ 못지않게 우리에게 중요한 이슈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 뿐 아니라 연방의회선거도 마찬가지다. ‘친이민’ 후보를 택해야 한다. 그래야 보수 대법원이 큰맘 먹고 건네준 ‘절반의 승리’를 지키면서 온전한 승리를 위해 나갈 수 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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