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6월의 하늘은 맑은 코발트색이다. 두둥실 떠 있는 뭉게구름은 수분을 많이 머금어서인지 여유만만하게 높이 더 넓게 다양한 모양으로 부풀어 있다.
주말이면 항상 금요일 밤에 아들네 집으로 출발, 토요일 한밤중 또는 일요일 브런치(Brunch)까지 챙겨 먹고 돌아오기도 하는데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95번 북행 도로를 한나절에 달리게 되었다. 춘하추동 사계절 노변(路邊)의 변화를 즐기면서 달리지만은 오늘같이 깨끗하고 풍요롭게 퍼져나가는 구름은 처음이다.
손에 잡힐 듯한 초대형의 뭉게구름은 나의 뇌리 속 깊이 뭉쳐있는 옛 생각을 끄집어 내 주었다. 유난히 깨끗한 흰 구름으로 만들어진 돌고래가 이곳저곳을 헤엄치고 있고 범선(帆船)도 있다. 거짓말 같이 칙칙폭폭 연기를 품으며 차량을 네 개나 단 기차가 완행인 듯 우리 앞을 서서히 지나간다. 그 뒤로 신기하게도 구식(舊式) 자전거가 한 대 나타난다.
정확히 75년 전 아버님이 나를 뒤에 태우고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新作路)를 신나게 달리던 자전거. 인격 형성기인 8살 때까지 살았던 오지(奧地) 시골, 바다가 지척인 아름다운 고을. 그 시대에는 취학 아동이 드물었다. 더욱 여자 아이의 취학은 희소가치가 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약 8킬로미터, 지금 같으면 20분 운전 거리지만 그 당시 나는 다음 동네 학생들이 있는 곳까지 아버님의 자전거에 실려 갔고 늦잠을 자서 학생들이 가고 없으면 어머님의 외가 쪽에서 나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시는 릴레이식 등하교를 했었다. 아버님은 공무수행 중 탄저병에 걸려서 우측 무릎 10센티 이하를 절단하시고 생명을 구하셨지만 평생을 의족(義足)으로 사셨다.
1940년 내가 7살 되던 해 용감하게 홍일점(紅一點)으로 장대 같은 남자들 틈에 끼여 천자문과 붓글씨를 배우게 해 주셨던 아버지. 그러다가 아버님의 고향인 낙동강 유역에 있는 소읍으로 이사하셨고 낚시를 즐기시던 아버님을 따라 다니며 돌새우 낚시에 빠지고 주변에 과수원이 많아서 계절 따라 신선한 과일도 많이 먹었다.
여학교로 전학해서 약 2년은 기차통학을 했다. 집이 기차역에 가까워서 늦잠자다가 서행으로 철교를 돌며 울리는 기적(汽笛)소리 듣고 뛰어나가 기차 맨 끝 차량 계단에 간신히 올라탈 수 있었다. 먼발치에서 그 관경을 보고 계셨던지 “사람이 기차를 기다려야지 기차가 사람을 기다라면 쓰나”라며 유머 감각 넘치는 충고를 주셨던 아버지. 의대 졸업 후 세 곳의 종합병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개업, 초창기의 어려움 속에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시키며 고군분투하는 나를 애처로이 보시며 “힘이 드나? 힘이 들 때면 우물 밑바닥에 있다고 생각해라. 밑바닥에 있으면 떠오를 일 밖에 더 있나”라고 격려해 주시던 아버지. 시골에서 소읍(小邑)으로 이사할 때 그냥 두어도 될 것을 큰 산 하나를 통째로 주어버리는 후한 인심을 가지신 아버지. 못난 딸 하나 달랑 낳으시고 깊은 시골에서도 면학(勉學)의 길을 열어주시고 독서하는 습관과 독립심을 길러주신 고마운 아버님. 무엇보다 다리 절단으로 불편한 의족을 달고 사신 아버님 이해 못해 드린 못난 딸 죄송해요 아버지. 이제 겨우 철들어가는데 용서 빌 기회를 주시지 않고 폐렴으로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신 아버지. 사후(死後) 시신을 보고 가슴을 치며 깊은 후회와 참회 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시대는 많이 변했다. 또 변해야 발전이 있을 것이 아닌가. 그 중에서도 획기적인 변혁은 일상생활의 전산화다. 가사노동은 줄었고 개개인의 육체노동량도 줄었으나 두뇌 활동량의 증가는 야외 활동 시간까지 뺏어가며 스트레스가 쌓이고 인간 본연의 따뜻한 감정교류를 희박하게 하고 있다.
가족 간의 범위를 멋대로 줄이고 무 자르듯 가족 간의 연줄을 싹둑싹둑 잘라버리는 신세대.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랴.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아올라 왔나, 그 누가 부모 뒷받침 없이 어떻게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음으로 양으로 최선을 다해 도우며 자식의 건강과 성공을 매일 기원하는 게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새로운 것만이 중요하고 장점뿐인 줄 알면 오산이다. 옛 것의 장점을 재발견 할 때가 반드시 돌아온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할까. 이제 장수(長壽) 시대가 열렸다. 부모도 자식을 위하여 인생사분기(人生四分期)를 즐겁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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