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년간을 가까이 지내던 한 친구가 폐암을 얻어 이제는 호스피스까지 찾아오는 마지막 삶을 살고 있다.며칠전 그 친구를 찾아가면서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두려움 마저 곁들인 착잡한 마음이 되었다.
친구는 침대에 누워서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일생을 통통한 모습으로 살아온 친구라서 얼굴이 동그랗고 귀여운 인상이었는데 너무 말라서 지금은 길쭉한 얼굴로 변해 있었고,몸은 침대 위에 착 가라앉은듯한 느낌을 주었다.나는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손은 의외로 따뜻하고 부드러웠다.그 얼굴은 마른 것을 빼고는 여전히 부드럽고 고운 살결을 지니고 있었다.어디고 죽음의 그림자는 없었다.
그녀는 한달만 더 버티면 팔십이 된다.팔십이란 나이는 짧게 살았다고는 할수 없다.예전 같으면 장수했다고 할수 있는 나이다.그녀는 다른 사람에 비해 팔자 좋은 삶을 살았다.어린 시절 육이오때 정말 배가 고팠다는 기억을 간직한것 말고는 좋은 남편을 만나 미국에 온후는 누구보다 호강을 누리며 산 친구다.
젊은 시절엔 백세까지 산다고 호언장담하던 친구다.딸인 캐티가 우유와 토스트 한쪽을 가져왔는데 친구는 우유만 겨우 마시곤 토스트는 먹지 못했다.건강할땐 누구보다 식욕이 좋아서 밥 한공기를 먹고도 늘 더 먹고 싶어서 입맛을 다시던 그녀였다.얼마 전까지 그녀를 방문할때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가곤 했는데 이젠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노인들은 밥힘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입맛을 잃으면 환자들에겐 더 치명적인 것 같다.사실 감기라도 걸려 입맛을 잃을때 우리들은 깨닫는다.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우리 딸이 얼마전 이런 말을 했다.요즘 자기의 인생은 아직 두살이 못된 아기의 입만 쳐다보고 사는것 같다는 것이다.아기가 입을 벌려 음식을 잘 받아 먹으면 행복하고, 그 조그만 입을 꼭 닫고 고개를 흔들며 음식을 먹지 않을때 너무 속이 상해 불행하다는 것이다.행불행이 아기의 입에 달려 있다고 한숨 쉬는 그애를 보며 이 세상에 사는 엄마들은 다 똑 같다는 생각을 했다.나도 저를 한때는 그렇게 길렀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그때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죽기전 마지막 길에 선 인간들의 영혼은 모두다 불쌍하다.어떤 형태의 삶을 살았건 한때는 불꽃처럼 살다가 허망하게 꺼져가기 때문이다.지금은 모든 인생의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돈과 명예와 그동안 살았을때 아끼던 모든 것들과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깊숙한 영혼으로 같은 취미나 공유하고 있는 지식을 나누었다기 보다 함께 쇼핑하고 함께 맛있는 밥을 먹고 함께 사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나누던 친구라고 할수 있다. 우리가 함께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면 미국인 남편을 가졌고 모두다 남편들이 쉐브론이라는 같은 회사에 다녔고 누구보다 가정적인 남자들이라는 점이다.
또 있다면 한국사회보다는 영어권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그녀는 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편하고 그녀의 의식도 이제는 한국인이라기 보다 미국인에 가깝다.한가지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입맛이다.
가끔 만날때마다 내가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면 만두국이며 비빔밥이며 잡채등을 잘 먹었다.그녀에 비해 나는 하루 한끼 식사는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고 한국 교회에 다니며 많은 한국인 친구들과 교류하며 지낸다.나는 미국에서 사십 이년을 살았으면서도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변치 않는 한국인이며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
우리들은 건강할때 건강에 투자해야 한다.은행에 돈을 저금하듯이 건강도 저금해야 한다.나는 일생을 끊임 없이 운동을 했다.테니스와 골프,줄넘기와 걷기를 쉬지 않고 했기 때문에 지금 노년기에 와서 튼튼한 다리와 튼튼한 허리를 가지고 있다.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서 끝까지 나는 내가 내 인생을 컨트롤하면서 살고 싶다.
다행히 그녀는 착실한 캐톨릭 신자다.한때는 나와 미국 성당에서 함께 몇년을 성경공부도 했다.이제 그녀의 얼굴이 편안한 것은 그녀가 모든것,즉 죽음을 받아 들였기 때문일 것이다."아이 엠 뤠디"라고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그녀의 남편인 쟌이 그녀가 손을 뻗치자 닥아와 가만히 그녀를 안아주고 볼을 쓰다듬었다.그는 지난 2년간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녀를 간호했다.
그녀가 미소를 띄고 눈을 감았다.쟌이 내게 눈짓을 한다.나는 조용히 그 방을 나왔다."친구여!안녕!"이라고 입속으로 말했다.그들의 사랑이 따뜻하게 내게 전해졌다.죽는 날까지 남편의 사랑을 받는 그녀는 불행한 여자가 아니라 행복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비록 지금 마지막 꺼져가는 불꽃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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