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세계 곳곳에서 중요한 선거가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5월 대선에 이어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었고 결과는 대통령을 낸 사회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올랑드 대통령은 의회에서 안정 과반수를 획득함으로써 소신 있는 국정을 펼 수 있게 됐지만 침체에 빠진 프랑스를 살려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튀니지의 한 행상의 분신 시위로 촉발된 ‘아랍의 봄’ 민중 봉기로 무바라크가 쫓겨난 후 처음 열린 이집트 대통령 선거에서는 ‘회교 형제단’의 지지를 받는 모하메드 모르시가 당선됐지만 그 전에 대법원이 새로 선출한 의회를 해산시키고 사실상 군부가 전권을 장악하는 바람에 상징적인 의미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이들 선거보다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그리스 총선이다. 인구 1,100만으로 유럽 최빈국의 하나인 그리스가 이런 주목을 받은 것은 만일 급진 좌파 연합인 시리자가 승리했을 경우 그리스의 유로 존 이탈은 필연이고 그렇게 되면 그리스 경제의 몰락은 물론 비슷한 처지에 놓인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부 유럽 각국의 연쇄 부도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2008년 리먼 사 파산으로 촉발된 대불황에 버금가는 충격이 세계 경제를 강타하게 된다.
이런 걱정 때문인지 그리스 유권자들은 긴축 정책에 항의하면서도 결국은 이를 지지하는 신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신민주당은 29%대 27%로 시리자에 신승했지만 1등을 한 정당에 50석의 보너스를 주는 특이한 제도 덕에 과거 30년 동안 그리스 정치를 주도하다 이번에 3당으로 몰락한 사회주의 파속 당과의 연정을 통해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파국은 면했지만 그리스의 앞날은 암담하다. 유럽 중앙은행과 IMF 등이 약속한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해서는 가혹한 긴축 재정을 시행해야 하는데 약하고 무능한 정부가 예상되는 시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무릅쓰고 이를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사 이것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리스 경제가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스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산업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관광을 제외하고 내세울만한 업종이 전무하며 앞으로도 이런 산업을 육성할 날이 언제 올지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유로 존 밖에 있었더라면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라도 있겠으나 지금은 그런 길도 막혀 있다. 경제 수준이 독일 등 유럽 선진국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그리스가 유로 존에 가입한 것부터가 무리였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 27개국 중 17개국의 공식 통화로 3억3,000만 명이 사용하고 있는 유로가 국제 시장에 공식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이다. 유로 주창자들은 나라마다 화폐 단위가 달라 가격 비교가 어렵고 수출입시 막대한 교환 비용이 발생한다며 단일 통화를 통해 유럽 경제에 활기를 불어놓고 정치적 통합도 앞당길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 대표적인 시장경제주의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튼 프리드먼은 1999년 유로가 출범하자 “10년 내로 유로 존은 무너질 것”이란 경고를 한 바 있다. 나라마다 경제 사정이 다르고 수준차도 큰데 이를 일률적으로 단일 통화로 묶어 놓으면 나라 별로 위기가 생겼을 때 대응 방안이 없다는 이유였다. 경제적으로는 단일 화폐를 쓰면서도 정치적 통합이 안 돼 있어 이익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됐다. 시간은 조금 지났지만 지금 그리스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 그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새 정부를 이끌게 될 신민주당의 안토니스 사마라스는 독일과 긴축 규모와 속도를 조절해달라는 재협상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독일 메르켈 총리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일부에서는 시리자가 이겨 차라리 그리스가 유로 존에서 떨어져 나가길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남아 있어 봐야 계속 손을 벌릴 것이고 더 이상 돈 대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그리스와 유럽은 어떻게 재정 위기를 타개해 나갈 것인가. 별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것이 정말 문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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