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佛,1875~1937)은 인상주의 작곡가이지만 춤곡 ‘볼레로’는 인상주의와는 무관하게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곡이다. 스페인 무곡으로 3박자 형식인데 특징은 똑같은 음의 연속… 반복의 미학이라고나할까, 마치 다람쥐 체바퀴도는 삶처럼 지루한듯 하면서도 다시 불 붙듯 타오르는 반복의 선율이 묘한 매력을 안기는 곡이다.
발랄하면서도 센슈얼하고 또 우수에 차 있는 이 곡은 라벨을 대표할 만큼 대중적인 곡인데, 라벨은 ‘볼레로’ 외에도 프랑스적인 상큼한 색채, 진한 우수가 넘치는 작품들을 많이 썼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베이지역,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와도 어울리는 작곡가라고나할까.
샌프란시스코는 늘 설레임이 있는 도시이다. 항구의 낭만일까, 아니면 방랑의 향수 일까, 어느 곳을 가봐도 늘 박하향같은 들뜸이 느껴져 온다. 땡! 땡! 케이블카의 타종 소리는 머리에 꽃 꽂은 여인을 볼 징조인까… 붉은 스커트를 입은 여인과 걷고 싶은 거리… 다문화 사회인 이곳은 여러 이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한데, 특히 프랑스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이민초기) 학교에서 사귀었던 월남친구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점령지였던 월남은 프랑스 문화의 여파가 남아 있는 곳으로, 불란서 커피… 카파치노의 향을 음미하는 법, 송아지 스테이크 등의 요리들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친구덕분이었다. 프랑스의 영향력때문이었을까, 친구는 동양인답지 않게 연애 등에 대해서도 매우 민감하고 로맨틱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월남 탈출 당시 사귀었던, (이미)정부있는 여인과 함께 짙는 데이트를 즐기곤 하였다.
정열이라고해서 모두 아름다운 것만은 아닐 테지만 그의 사랑은 아마도 생과 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환경에서 만난 사랑이었기에 더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고 스쳐가는 한때의 로맨스에 불과했지만 친구의 사랑은 매우 진지하고 열정적이며 또 우스꽝스럽기도 한 것이었다. 어딘가 스페인적인 정열… 동양적인 우수가 짙게 깔린… 샌프란시스코에서나 들어 볼 수 있는 그런 로맨스 스토리였다고나할까.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정열적이면서도 우수가 느껴지는 이곳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은 역시 스페인 풍의 칼멘(꽃노래) … 그리고 라벨의 춤곡 등 일 것이다. 그중 볼레로는 18세기경 스페인에서 유행했던 춤곡을 오케스트라화한 것으로 라벨의 나이 53세 때(1928년경), 파리에서 활약하던 러시아의 유명 발레리나(루빈스타인)를 위해 써진 곡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어느 어느 술집에서 술취한 구경꾼들이 한 여인의 춤을 구경하는데, 여인의 춤이 갈수록 점입가경, 극에 달하자 갑자기 흥분한 군중들이 칼을 빼들고 집단 난투극을 벌이게 된다는 내용이다. 단조로운 두 개의 선율이 반복하다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클라이막스에 이르게 되는데, 아름다운 선율때문인지 피겨 스케이팅… 체조 등의 배경음악으로도 널리 선곡되고 있다.
이 작품은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의 주제음악으로 사용되기도했는데 삶이란 반복되는 파란이지만 같은 파란이라도 모두 뼈아픈 아픔으로 다가온다는 영화의 경구로도 유명하다. ‘볼레로’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채 한달로 못되었을 때 들었던 곡이었다.
곡목도 모른채 갔었던 음악회… 그저 들려오는 것은 음악이었고 검게 보이는 것은 오케스트라였지만 음악회의 설레임… 정열의 선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무도 보아주는 사람도, 같이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때는 왜 그렇게 푹 젖어드는 그 무언가를 찾으려고 애를 썼는지… 피날레로 울리는 ‘볼레로’의 선율이야말로 가끔 잃어버린 듯 깜짝깜짝 회상되는 청춘의 아쉬움… 꺼져버린 정열… 불처럼 다시 일어나는 환상의 그… 심포닉 댄스가 아닐 수 없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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