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큰 집을 떠나 이 산장 같은 작은 집에 살면서 제일 미련을 두고 또 그리워 지는 것은 집이 아니라 수십년을 가꾸고 정이 들었던 정원이다.집은 가꾸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으나 정원은 다르다.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 같은 땅에 나무를 심고 작은 슈러브들을 심고,또 갖가지 꽃나무나 형형색들의 꽃들을 심어서 그것들이 자라 하나의 독특한 형태의 뜰을 만드는 것은 시간과 돈과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이년전 이 로스모어로 이사를 온후, 나는 나만의 뜰은 없지만 마침 제법 큰 베란다가 있어서 그곳에 몇그루의 화분들과 여러색깔의 난을 심어 그런대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이곳의 규칙은 자기 마음대로 나무나 슈러브는 심을수 없으나 앞 정원에 작은 꽃들은 심을수 있어서 우리 이웃들은 앞을 다투어 자신들이 좋아하는 꽃들을 심어서 특히 이번 여름에는 작은 꽃밭이 아주 풍성하다.노오란 금잔화와 여러 색깔의 콩꽃과 키 작은 보라색의 꽃들이 이제 막 지기 시작한 크고 화려한 로드댄드롬 밑에서 함초롬히 이슬방울들을 머금고 있다.
우리 집 이층에 살고 있는 케이티는 흰 피부와 금발의 전형적인 백인 할머니로 요리도 잘하지만 그녀가 굽는 쿠키는 일품이다.시간이 나면 늘 앞뜰에 나와서 꽃밭을 손질하고 만나면 늘 환한 미소를 보내는 최고의 이웃이다.이번 겨울이면 그녀와 그녀의 남편인 바이런은 결혼 육십년을 맞이한다고 한다.얼마전에 바이런이 대장암에 걸려 나이 팔십이 넘었지만 수술을 잘 견뎌서 요즘은 둘이 손을 잡고 가끔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것을 볼수 있다.
케이티의 말이 지난 육십년간을 남편이 자신을 잘 돌보아 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자신의 차례로 그를 잘 돌봐야 한다고 말 했다.그녀의 말에서 노부부의 진한 사랑이 느껴졌다.이렇듯 함께 반세기를 살아 오면서 아직도 진실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은 정말 존경스럽다.
우리 부부도 사십 삼년을 함께 살았다.우리도 과연 오십년을 함께 살아 금혼식을 치룰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오십년이란 정말 긴 세월이다.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것을 다섯번이나 견딘 세월이니 아득한 시간이며 또 눈 깜짝하고 지난 세월이기도 하다.
꽃을 가꾸고 꽃밭을 가꾸는 일은 삶을 가꾸는 것과 같다.우리들은 살아 가면서 저마다의 꽃밭을 가꾸며 산다.예쁜 자식들을 낳아서 정성껏 길렀다.그리고 그들 또한 그들의 자식들을 낳아 힘든줄 모르고 기른다.
어제 딸네 집에가서 바베큐를 해서 먹으며 세살짜리와 이제 두돐이 아직 안된 꼬마 녀석이 작은 풀장에서 물장구를 치며 즐겁게 노는 것을 보며 이런 것이 바로 평범한 일상이며 행복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나이 사십이 넘어 늦게 결혼한 사위는 지금 아이들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자신이 이렇듯 아이들 기르는 재미에 푹 빠질줄은 자신도 미쳐 몰랐다고 한다.우리 딸보다 나이가 아홉살이나 많은 사위는 올해로 오십이 되는데 늘 딸 아이를 부를때 마이 영 와이프라고 부른다.자기 친구들 가운데 제일 젊은 아내를 두었고 또 제일 예쁘다고 은근히 으시대기도 한다.
내가 아침마다 육통권이란 스트레취 운동을 하는데 그곳에 아흔 두살 먹은 중국계 할머니가 있다.얼굴에 주름도 별로 없고 또 기억력이 뛰어나서 많은 친구들의 전화 번호를 암기하고 운전도 하고 걷기도 잘 한다.젊을때는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 테크니션이었다고 한다.
내 나이를 묻고는 칠십대는 참 좋은 나이지.내가 칠십대였을때는 정말 신나게 살았어.여행도 많이 하고 참 즐거웠다고 말했다.또 팔십인 사람보고는 팔십도 괜찮은 나이야하고 웃는다.내가 육십대를 볼때 저 나이만 돼도 참 괜찮은데---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지나간 시간들이 새삼 소중했음을 느낀다.
내가 팔십이 되어 있을때 참 칠십대만 해도 괜찮았는데--하며 또 아쉬워 할까?.이렇듯 인간들은 늘 어리석다.어느 작가가 그런 말을 했다.많은 사람들이 오늘을 저당 잡히고 오직 내일을 위해 산다고,사실 오늘만이 확실히 내가 가진 시간이며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불분명한 시간인데 말이다.
누구나 시간을 붙들어 둘수 없다.황홀하게 행복했던 시간도 지나고 외롭고 처절하게 고통스럽던 시간도 다 지나간다.결국 나를 포함해 내 주변에 한때 가장 귀중했던 가족이나 친구들도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기에 인간들은 늘 영원함에 목을 메는가 보다.
오늘 아침도 작은 꽃밭에서 앙징스런 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나를 보아 달라고 속삭이는것 같다.그 작은 몸짓들이 오늘따라 더 소중하게 느껴짐은 거기서 느껴지는 생명의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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