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7일자 한국일보 본지에 ‘6.25땐 이렇게 먹었어요’라는 제목아래 한국자유총연맹 주최 ‘6.25체험 시식회’ 사진이 났다.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인 찐 감자와 보리개떡, 보리주먹밥을 보면서 사진 속 젊은이들이 맛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 지 궁금하다.
‘물에 개서 찐 떡’이라는 개떡은 고운 보리겨 가루를 물에 개어서 만든다. 쑥을 쌀가루와 함께 빻아 반죽하여 아이 손바닥만한 크기로 빚어 찜통에 쪄낸 것은 쑥개떡이다. 쌀이 모자라던 시절, 일반가정집에서는 수시로 수제비나 국수를 식탁에 올렸고 전쟁후 미국이 원조한 옥수수죽도 수없이 먹었다.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찐 감자와 고구마를 한 끼 식사로, 먹을 것만 있으면 서로 더 먹으려고 다투었다. 전쟁의 회오리바람 속에 생명부지에 급급하던 고통의 시간 속에 늘 모자람을 느끼며 먹던 음식이니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산다는 것과 음식은 불가분의 관계,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에 먹거리에 대한 것이 많은 지도 모른다.‘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이 설움 저 설움 하지만 배고픈 설움이 제일’, ‘밥은 봄같이 먹고 국은 여름같이 먹고 장은 가을같이 먹고 술은 겨울같이 먹는다’(밥은 따뜻하게 국은 뜨겁게 장은 서늘하게 술은 차게 마셔야 한다)는 말들이 있다.6.25 전후 생존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먹거리였지만 지금 한국은 좋은 것만 골라먹는 웰빙 먹거리에 먹거리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될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뉴욕에서도 이런 ‘오감만족’ 한식 상차림을 대할 때가 있다. 화사한 색깔 맞춰 앙징맞게 만들어낸 밑반찬들을 보면서 눈은 호사를 하는데 선뜻 수저와 젓가락이 나가지 않았었다. 황석영이 쓴 책 ‘맛과 추억’을 인용해 본다. 5년형을 받은 황석영이 교도소로 이감되어 0.8평 독방에서 살던 시절, 교도관들이 일일이 감시할 수 없으니 수감자 중 한 명을 평균 6개월씩 잡아서 이 특별 독거수와 함께 생활하게 했다.그를 봉사원, 즉 일제시대 그대로의 이름인 ‘소지’라고 불렀다는데 그들은 대개 20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5년동안 십여명의 소지들과 매일의 끼니를 의논하며 살아가는 음식 이야기가 나온다.
난로의 연통을 길게 펴서 네모반듯하게 사방을 접어올린 양철 프라이팬을 구해 석방 이틀 전에 나가서 묵는 독립 사동에 가서 연탄 아궁이 불에다 김치전을 붙여먹었다고 한다.‘머리위로는 싸락눈이 풀풀 날리고 우리는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마가린을 프라이팬에 녹여 김치를 섞은 밀가루 반죽을 부어서 부쳤다. 역시 김치 부침개는 잘 익으면 귀퉁이가 아삭거리고 고소하고 제일 맛이 있다. 거길 떼어먹다가 바라보니 준식이 눈에 눈물방울이 고였다가 톡 떨어진다. “왜 그래, 뜨거워서 그러냐?” “아니요.” “그럼 뭣 땜에 그래?” “어머니 생각나서요” ‘
음식은 추억의 맛이 함께 들어가 있어야 제맛이 나는 것이다.6.25 당시 음식을 맛있다고 먹는 세대는 그 시절 추억을 함께 먹는 것이다. 극한 상황을 견디며 버텨나간 사람들은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었고 평생 가족을 먹이기 위해 애쓰던 ‘어머니 손맛’을 잊을 수 없다.어렵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요즘 자신들이 얼마나 풍요롭고 호화로운 음식의 맛에 길들여져 있는 지 반성해야 한다.
미국에 살면서 피터 루거 스테이크, 맥도널 햄버거, 스타 벅스 커피, 베스킨 라빈스 아이스크림, 각종 야채가 담긴 샐러드볼에 길든 입맛에는 과연 어떤 추억이 자리할 까.그렇다고 이 더운 날, 저녁마다 식사 준비가 쉽지 않다. 이럴 때 남이 해주는 음식을 젓가락과 수저만 달랑 들고 가서 먹고 왔으면 싶다. 가만히 우아 떨고 앉아 다른 사람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 직접 한 음식보다 훨씬 맛있을 것이다. 그러나 식당에 가자니 귀찮고 돈 들고, 남의 집 가면 번거롭고, 이래저래 집에서 서툰 솜씨로 ‘추억만들기’ 음식을 하자니 그게 보통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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