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예선 하루 전날,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주지사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 “캘리포니아는 내일 새 역사를 쓸 것이다. 시민들이 재조정한 선거구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로 첫 선거를 치르며 미 전국적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할 것이다”
그는 200년간 지속되어 온 게리맨더링(정치인들이 자기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불공평하게 재조정하는 행위)의 역사를 단절시키고 민의를 대변하는 정치가를 선출하려는 건전한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특히 무소속 유권자들의 적극적 투표참여를 호소했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지난 5일의 예선은 캘리포니아 정치가 고질적 양극화의 교착상태를 깨고 ‘멋진 신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를 가늠해보는 첫 시험대였다.
새로운 제도 두 가지가 도입되었다. 둘 다 주 의회의 극단적인 당파정치를 해소하기 위해 프로포지션으로 주민투표에 회부되어 통과된 결과다. 중도적 실용정책을 약속하며 신선한 새 얼굴로 새크라멘토에 입성했다가 양극화 정치게임에 손발 묶이면서 실패한 주지사로 퇴장했던 슈워제네거가 누구보다 앞장 서 지지했던 사안들이다.
하나는 정치인이 아닌 시민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의한 선거구 재조정이다. 그동안 캘리포니아는 현직들에겐 미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표밭으로 꼽혀왔었다. 선거구 재조정을 맡은 주의회가 현직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기형적으로 재편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 센서스 이후의 재조정은 독립적인 시민위원회가 담당했다. 정치적 입김이 줄어들면서 같은 현직의원들이 한 선거구에서 맞붙고, 현직에겐 따논 당상이었던 의석의 상당수 지역이 예측불허의 접전지로 바뀌었다.
다른 하나는 톱-투 프라이머리(Top-two primary), 오픈 프라이머리, 혹은 난립한 후보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 프라이머리’ 등으로 불리는 새로운 예선제도다. 연방의회와 주의회, 주지사 등 공직 선거가 대상이며 대통령 선거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번엔 연방상원 1석과 하원 53석, 주 상원 20석과 하원 80석이 열린 선거로 치러졌다.
주 예선을 오픈 프라이머리로 바꾸면서 각 당의 후보를 뽑는 종래의 경선은 없어졌다. 정당은 공개지지나 자금 지원 등은 할 수 있지만 ‘지명’은 못한다. 투표지엔 모든 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이름이 한꺼번에 올라왔고 유권자는 아무나 마음에 드는 후보 한 명에게만 투표했다. 이중 최다득표 1.2위 두 명만 본선에 진출한다. 후보에게도, 유권자에게도 당적의 의미가 없어지는 ‘열린 선거’다.
중도는 설 자리 없는 캘리포니아 정계에 초당적 협력이 가능한 중도파 정치가들의 등용문을 넓혀주기 위한 것이며 전체 유권자의 21%로 늘어난 무소속 그룹의 보이스를 반영하자는 뜻도 있다.
‘톱-투’를 제안한 프로포지션 14가 발의될 때부터도 반대가 극심했다. 양당체제가 무너질 것이다, 본선에서 같은 당 후보끼리 대결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돈이 훨씬 많이 드는 과열선거가 될 것이다 등 비난과 함께 이미 오픈 프라이머리를 시행하는 워싱턴 주에서 별 효과를 못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민생보다는 자당 강경 핵심그룹의 눈치 보느라 초당적 타협은커녕 갈수록 양극화로 치닫는 주의회에 진저리가 난 유권자들은 2년 전 주민투표에서 ‘톱-투’를 선택했고 이번에 그 실용성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정치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두 가지 새 제도가 맞물려 치른 이번 예선의 가시적 성과는 그러나 그리 신통치 못하다. 투표율은 저조했고 이전의 예선에서처럼 표밭은 이념성 강한 양당의 핵심 유권자들이 압도했다.
무엇보다 기대했던 무소속의 약진이 보이지 않는다. 본선에 진출한 무소속 후보는 5명 정도다. 모두 1위 아닌 2위다. 현직은 대부분 1위로 모두 본선에 진출했다. 새 제도가 게임체인저 역할을 못했으니 워싱턴도, 새크라멘토도 당분간은 ‘현상유지’에 머무를 것이다.
반대자들이 우려한대로 같은 당 후보끼리 11월 본선에서 대결하는 선거구가 20여개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연방하원의 경우 공화당 끼리 붙는 곳이 2개, 민주당 대 민주당이 6군데나 된다. 앞으로 5개월 ‘집안싸움’에 지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게 돼었다.
긍정적 성과도 없는 것은 아니다. 예선에서 ‘중도적’ 입장을 보여주는 양당후보들이 늘어났다. 막강 민주당 지원세력인 노조에 맞서는 민주당 후보들이 늘어났고 종래 공화당 경선승리의 절대조건이었던 ‘세금반대 서약’에 서명을 거부하는 공화 후보들도 등장했다.
USC 댄 슈너 교수의 지적처럼 “후보들이 자당의 핵심표밭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보다 다양한 계층의 유권자와 보다 폭넓게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를 해소하여 합리적이고 초당적인 의회 구성”이라는 열린 예선의 유토피아적 취지가 현실이 될지 알려면 최소한 몇 년은 더 지나야한다. 이번 예선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의 내년 회기 득실 계산이 어떻게 될 지도 11월 본선이 끝나야 드러날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역사적인 선거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캘리포니아가 극단적 이념에 집착하는 양극화를 넘어서 합리적 민생정치로 가는 ‘멋진 신세계’에 첫 발을 딛었다고 믿고 싶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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