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이 심해지는 모양이다. 지난주 출근길에 자동차 열쇠를 챙기지 않고 아파트 주차장까지 나갔다가 도루 방에 들어왔다. 출근한 후 한참 일하다가 전화기를 집에 두고 온 사실을 알아차린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교회 화장실 세면대 위에 성경책을 놔두고 유유히 나온 적도 있다. 노화현상이 아니라 원래 성격이 꼼꼼하지 못한 탓이라고 애써 자위한다.
그러나 성격과 관계없이 깜깜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점점 많아지니 문제다. 고교시절 가까웠던 은사 한분의 성함을 까먹고 몇 달째 끙끙대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보다 훨씬 후인 중견기자 시절 함께 뛴 동료들과 당시 담당부서 장관들 이름도 잊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주 칼럼에 뭘 썼는지 생각나지 않아 머리를 쥐어짤 때도 있다. 충격적이다.
혹시 치매 초기증상일는지도 모른다.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고모님이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셨고, 이모님 한분은 지금 중증 치매환자다. 빼어난 미모에 교수부인의 교양이 몸에 배어 있던 이모님은 치매를 10여년 앓으시더니 완전히 딴 사람이 됐다. 다행히 어머님은 90을 훨씬 넘기셨지만 자식들보다 기억력이 더 또렷하시다. 내가 믿는 구석이다.
지난 1994년 말경 치매가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퇴임 5년 만에 국민에게 쓴 친필편지가 TV에 공개됐다.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음을 알리고 “아직 정신이 멀쩡할 때” 국민에게 작별인사를 드린다는 내용이었다. 언변이 청산유수였던 레이건은 그 이후 대중의 눈과 귀에서 사라진 채 10년 후인 2004년 93세로 별세했다.
알츠하이머는 빈부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물론 젊은이보다 노인, 남자보다 여자가 많이 걸린다. 기억력, 사고력, 이해력, 판단력, 자제력, 계산능력, 언어능력, 인지능력, 시간-공간 개념 등 두뇌의 모든 기능이 서서히 줄어들거나 상실돼 결국엔 백치로 전락한다. 먹고 배설하기 등 일상생활의 기초 활동조차 남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게 된다.
알츠하이머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번지는 질병이다. 매 70초마다 새 환자가 발생한다. 현재 환자 수는 540만명(65세 이상만 510만명)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령화함에 따라 치매환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현재 추세라면 2050년엔 1,600여만 명에 달한다. 알츠하이머는 이미 미국인 사망원인 질병 중 당뇨를 제치고 6위에 올라 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치료와 수발에 드는 비용도 가히 천문학적이다. 올해에만 2,000억달러, 2050년엔 자그마치 1조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된다. 완치될 것을 기대하지 않고 뿌리는 돈이므로 순전히 낭비이다. 환자는 오히려 천하태평인데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입는 정신적, 경제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가정파탄이 일어나는 경우도 흔하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 주 ‘알츠하이머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오는 2025년까지 치료제(또는 지연제)개발을 연방정부 아닌 국가차원의 전략으로 정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대를 이어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긴박하며 인간적인 전쟁이다. 전쟁비용도 비교가 안 되게 싸게 먹힐 터이다.
국립보건원(NIH)은 코로 인슐린을 흡입하는 새로운 치료법의 임상실험에 5,000만달러를 즉각 배정했다. 거의 모든 주민이 알츠하이머 환자인 콜롬비아의 메델린에서 ‘예비환자’ 300명을 대상으로 새 예방약을 임상실험 할 계획이다. 의료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약 1억달러의 실험경비 중 6,500만달러는 예방약 ‘크레네주맵’의 개발사인 ‘지넨텍’이 부담한다.
한인노인들도 ‘치매와의 전쟁’을 선언하자. 치매는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예방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된다. 걷기운동, 취미(봉사)활동, 두뇌훈련(수도쿠 등), 책(신문) 읽기, 컴퓨터 활용하기, 과로(스트레스) 피하기, 연령(성) 구별 없이 폭넓은 교우관계 유지하기 등이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꼭 치매예방이 아니라도 노인들에게 필요한 건강수칙이다.
윤여춘/ 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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