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과 흙 매개로 한 70년대의 미술사조 이정표적 전시… 잘못된 신화 깰 기회
▶ 모카 현대미술관 27일 개막 ‘랜드 아트’전 기획 큐레이터 권미원 교수
‘대지예술’ 혹은 ‘랜드 아트’란 단어가 생소하게 여겨진다면 오는 5월27일부터 9월3일까지 게픈 모카 현대미술관(Geffen Contemporary
at MOCA)에서 열리는 ‘대지의 끝: 1974년까지의 랜드 아트’(Ends of the Earth: Land Art to 1974) 전시회를 가보는 것이 좋겠다.
대지예술은 문자 그대로 땅과 흙을 도구로 예술활동을 펼쳤던 미술사조를 말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소수의 작가들이 땅을 매체로 전개한 미술운동으로서, 미국에서는 네바다, 뉴멕시코, 애리조나의 사막에 대표적인 작품들이 조성돼 있다.
이들은 다이너마이트를 폭발시켜 웅덩이를 만들기도 하고 흙, 돌, 소금을 파내거나 쌓아서 거대한 건축 구조물이나 조각물, 방파제 등을 남겼는데 이런 작품은 사고 팔 수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소멸된다는 점에서 기존 예술작품과 차별화된다. 대표적인 작가가 이번에 LA카운티 미술관에 340톤짜리 화강암을 옮겨온 마이클 하이저로, 네바다주에 있는 그의 ‘더블 네거티브’(1969~70)는 모카가 그 땅을 구입함으로써 모카 소장품이 됐다.
‘대지의 끝’ 랜드 아트 전시회는 직접 본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고 사진이나 기록으로만 막연하게 전해져 오는 ‘랜드 아트’를 총체적으로 다룬 최초의 뮤지엄 기획전으로, 미술계에서는 이것이 역사적이며 이정표적 시도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전시를 위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대지미술 현장을 찾아다니고, 100여작가를 찾아내 설득하며 4년 넘게 일해 온 2명의 큐레이터가 권미원 교수(UCLA 미술사학과)와 필립 카이저 모카 수석큐레이터다. 27일 오프닝을 앞두고 설치와 공사가 한창인 게픈 모카 전시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랜드 아트를 어떻게 뮤지엄 안에 전시할 수 있는가, 아티스트들의 본래 의도를 거스르는 것이 아닌가?
▲이 전시는 마이클 하이저의 ‘더블 네거티브’(Double Negative)나 로버트 스미슨의 ‘나선형 둑’(Spiral Jetty·유타), 월터 드 마리아의 ‘번개 치는 들판’(Lightening Field·뉴멕시코) 같은 작품을 뮤지엄에 전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작품들은 이미 그 존재와 의미가 널리 알려져 있고, 정말 보고 싶은 사람들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직접 찾아가야 작품이 주는 진정한 심미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는 사람들이 대지예술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개념이나 신화들을 바로 잡고 정리하려는 목적으로 기획됐다.
-잘못된 개념은 무엇인가?
▲대지예술하면 미국에서 백인 남성들이 사막으로 나가서 했던 예술인 줄로만 아는데 사실은 15년 동안 전 세계에서 땅과 관련하여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예술운동이었다. 100여명의 작가들 중에는 여성도 12명이 포함돼 있으며 작품 종류도 사막과 땅의 조각, 건축, 인스톨레이션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과정을 수록한 사진, 드로잉, 필름, 비디오 등 다양하다.
이번 전시에는 호주, 브라질, 캐나다, 프랑스, 독일,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일본, 멕시코, 체코슬로바키아, 네덜란드, 영국 등지의 작품 200여점이 소개된다. 굳이 사막까지 안 나가도 볼 수 있는 작품들이고 몇몇 작품은 실제와 똑같이 전시장에 재현해 놓았다.
-대지예술에 대한 신화는 무엇인가?
▲미술의 상업화에 환멸을 느낀 작가들이 미술계를 떠나서 했던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처음부터 컬렉터, 패트론, 딜러, 큐레이터가 대지예술가들의 작업과 전시, 판매에 참여했다. 68년에 이미 어떻게 전시해야 할지 또 소유나 판매의 방법에 관해 연구했으니 미술계를 떠난 게 아니고 오히려 전시를 통해서 랜드 아트가 생겨난 것이다.
또 하나의 신화는 도시를 떠나서 사막 같은 자연 속에서만 일어났다는 오해인데 사실은 많은 작가들이 토목공학, 건축, 도시계획, 공공예술, 사회 기반시설 속에서 대지예술을 구현하고 있었다. 이런 신화가 형성된 것은 포퓰러 저널리즘의 탓이 크다. 대지예술도 팝아트처럼 초기부터 미디어의 조명과 주목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랜드 아트란 스케일이 거대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자연과 연관되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신화가 형성되었다.
-랜드 아트는 74년에 끝났나?
▲랜드 아트는 68년부터 70년까지가 전성기였으며 이 전시는 1960년대부터 74년까지의 초기 실험적 작품들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74년 이후 대지예술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진화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는 공공미술이나 장소 특수적 미술, 조경예술, 공원예술 등의 여러 형태로 변형되거나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랜드 아트가 있지만 그때와는 다르고 규모가 더 커지거나 영구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찰스 로스가 74년 시작해 지금까지 건축 중인 엄청난 크기의 천문대(Star Axis·뉴멕시코)나 제임스 터렐이 79년부터 짓고 있는 로덴 분화구(Roden Crater·애리조나)가 그런 것들이다.
-60년대 전 세계에서 동시에 랜드 아트가 출현한 이유가 있을까?
▲당시 시대적 배경은 냉전시기에다 우주왕복선이 처음 달에 착륙했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경계와 영토에 관한 작업이 많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작가들이 키부츠와 팔레스타인에서 땅을 판 다음 두 군데의 흙을 바꾸는 작업을 했다. 또 네바다 사막에서는 핵실험을 패러디한 폭발작업도 일어나는 등 다분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랜드 아티스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아트를 통해 사회적 문화적 한계를 확장하려는 파워풀한 작업을 한 작가들이다. 요즘 작가들은 재미있는 작업을 하지만 그런 파워와 에너지를 볼 수 있는 아티스트들이 그립다. 작가들은 거의 다 생존해 있는데 사실은 이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다들 에고가 큰 작가들이라 남들과 함께 전시한다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랜드 아트가 없었나?
▲열심히 찾아봤으나 없었다. 이성택이란 사람이 비슷한 걸 했지만 대지예술이라 할 수는 없는 작품이었다.
-랜드 아트를 얼마나 많이 찾아가 보았나?
▲주로 미국에 많아서 거의 다 찾아가 보았다. 마이클 하이저가 네바다 외진 곳에 다이너마이트와 불도저로 파낸 ‘더블 네거티브’는 2주 전에도 다녀왔는데 벌써 많이 무너져가는 모습이었다. 이런 랜드 아트들은 찾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어 보러 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 길도 위험한데다 포장도 안 돼 있고 셀폰도 안 터지는 곳이라 타이어 펑크라도 나면 정말 어렵다. 진짜 아트를 보려면 이렇게 힘들게 찾아오라는 것 같다.
-쇼를 완성한 소감은?
▲4년 이상 걸린 어려운 작업이었다. 전 세계 대지예술을 포괄적이고 복합적으로 다룬 첫 번째 전시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전시는 모카 역사에서도 이정표적인 전시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 미술계에서는 시도하지 않는, 그러나 진지한 작가들은 무척 그리워하는, 그리고 다시 하기 힘든 쇼가 될 것이다. 모카 전시가 끝나면 올 가을 뮌헨으로 간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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