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에 첫 출전한 수퍼팩(Super PACs)의 메인 경기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수퍼팩은 2010년 기업의 선거광고를 무제한 허용한 대법원의 판결로 태어난 초강력 ‘독자적 정치활동위원회’다. “후보와 직접적으로 협조해서는 안된다”는 제약만 형식적으로 지키면 된다. 기업과 노조, 개인, 모두에게서 얼마든지 돈을 받아 특정 후보, 특정 정당을 위해 마음껏 쓸 수 있다.
‘우리의 미래를 복원하라’‘미국의 갈림길’‘미국을 위한 최우선 행동’ 등의 명칭만 들어선 뭐하는 단체인지도 알 수 없고 누구에게서 얼마를 받았는지 돈의 출처를 밝힐 필요도 없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채 등장한 이들이 처음 뛰어든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 지 한편에선 기대에 차서, 다른 한 편에선 우려의 눈길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공화당 대선경선을 통해 일부 수퍼팩들이 예선을 치르긴 했지만 연방선거위에 등록한 500여개 수퍼팩 중 대부분은 그동안 본선에 대비해 몸만들기에 주력해 왔다. 그리고 최대규모 수퍼팩인 ‘미국의 갈림길’이 어제부터 행동 개시에 들어갔다.
공화당의 전략가 칼 로브가 공동설립한 ‘미국의 갈림길’과 계열 수퍼팩인 ‘갈림길 GPS’와 공화당 광고의 귀재 래리 맥카시의 합작품인 첫 프로젝트는 ‘농구(Basketball)’라는 제목의 TV광고다. 2,500만달러짜리 오바마 때리기 첫 패키지의 하이라이트로 10개 경합주에서 23일부터 방영되고 있다.
창밖에서 농구를 하며 노는 두 자녀를 바라보던 젊은 엄마가 나이든 모습으로 변하면서 취업 못해 집으로 돌아온 성인자녀, 학자금 대출 빚, 은퇴도 못할 형편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을 걱정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너무 말을 잘해 그를 지지했었다. 그는 변화를 약속했으나 상황은 더 나쁘게 변했다”고 실망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혹독한 공격은 없다. 그러나 오바마의 정책으로는 이 경제상황을 이겨낼 수 없다는 메시지를 부드럽지만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는 게 취지다.
지난 수개월간 각 지역별 18개 포커스 그룹 모임을 통해 오바마에 대한 유권자 심리를 연구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제작된 광고다. “금년 공화당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호감도 높은 대통령에 대한 실망을 합리화시켜주는 강력한 공격 포인트 찾기”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한다. 4년 전 그에게 투표했던 무소속 유권자들에게 이번엔 왜 뽑아선 안 되는가를 확실하게 심어서 그들의 표심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갈림길’의 금년 선거자금 목표액은 2억4천만 달러다. 보수주의 억만장자 카치 형제들도 수퍼팩 통한 2억 달러 모금을 약속하고 있다. 이 대부분을 앞으로 5개월 반 동안 오바마 때리기에 쏟아 부을 것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대부분 보수인 수백개 수퍼팩들이 어떤 광고로 어떤 때리기에 돌입할 지는 예측불허, 제어불허다.
지난 주 논란 속에 무산된 ‘버락 후세인 오바마 타도’라는 제목의 광고 같은 게 또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오바마를 ‘메트로 섹슈얼 링컨’이라고 묘사하며 과격파 흑인목사 제레미야 라이트와 엮고 있는 인종주의적 광고였는데 기획안이 뉴욕타임스에 보도되면서 논란을 일으키자 미트 롬니가 즉각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명하고 1천만달러 기부를 ‘잠정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던 억만장자 조 리케츠가 지원을 철회하면서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선동적 광고는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 해프닝은 무모하고 공격적인 컨설턴트와 독선적인 억만장자가 의기투합하면 후보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거전에 폭탄을 떨어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수퍼팩이 네거티브 선거풍토 조성에 앞장 설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수퍼팩 지원에선 공화당이 절대 우세하다. 그러나 오바마도 큰소리칠 입장은 못 된다. 연방대법의 판결을 질책하던 신념은 접어두고 지난 2월부터는 민주당 지지 수퍼팩에 공개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만 일방적으로 무장해제 당할 수는 없어서”라는 구차스런 호소와 함께 돈의 위력에 굴복한 것이다. 오바마를 지지하는 수퍼팩 ‘미국을 위한 최우선 행동’의 모금력은 허약하다. ‘…갈림길’의 현금보유고는 4월말 현재 ‘…최우선 행동’의 5배에 달한다.
‘…최우선 행동’도 오바마 때리기 광고에 맞서 롬니 때리기에 나서긴 했지만 현재 공화당 지지 수퍼팩에 전면 대응하고 있는 것은 오바마 캠페인 진영이다. 경선을 치르지 않은 오바마 진영의 자금이 아직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여러 회사를 인수해 구조조정을 한 뒤 비싸게 되파는 사모펀드 ‘베인 캐피탈’의 최고경영자였던 롬니의 기업가 경력을 일자리 잡아먹은 ‘흡혈귀’로 비유한 원색적 공격을 담은 ‘줄타기’ 광고를 시리즈로 방영하고 있다.
오바마와 민주당의 현재까지 모금한 선거자금은 5억4,700만달러다. 롬니와 공화당의 모금액도 4억6,200만달러다. 여기에 수퍼팩까지 수억달러 돈 다발을 들고 합세했으니 금년 대선은 사상 최고의 ‘돈 선거’가 될 것이 틀림없다. 별로 모양새도 좋지 않은 상대방 때리기 광고에 수천수백만 달러가 콸콸 쏟아 부어질 것이다.
모기지 페이먼트, 자녀 학자금 대출, 개솔린 값에 허덕이는 유권자들에게서 한 표를 얻겠다고 벌이는 돈 잔치의 규모로는 너무 크고 너무 아깝다. 대법원의 해석처럼 ‘표현의 자유’인지, 개혁가들의 지적처럼 ‘합법적 뇌물’인지 구분하기 힘든 무제한 선거자금이 난무하는, 이상한 새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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