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우리는 때때로 대중 속의 고독을 느끼면 살아 갈 때가 많다. 버려졌다는 느낌… 그리고 절망감… 이것은 산다는 무대에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숙명같은 감정일 것이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가슴 한 쪽은 늘 텅빈… 영원한 만족을 간직한 인생이란 없다. 빅톨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이런 비참한 인생들의 이면을 그리고 있는데, 천사같이 청순한 코제트보다 잡초같은 에포닌 역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바로 이러한 비참함… ‘레미제라블’의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인생이란 누구나 스포트라잇을 원한다. 즉 주역을 맡고 싶어하고, 1등을 원하는 것인데 누구나 2등은 기억조차 하려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무대에서도 조역이란 그저 2등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에포닌 역의 경우,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변함을 알 수 있다. 즉 드라마를 살려주는 것이 바로 조역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스포트라잇이란 어둠 속에서 더욱 강렬한 빛을 발하게 되지만 그 어둠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조역의 역할이다. 주연이란 얼굴만 조금 받쳐주면 그대로 갈 수 있지만 조역의 역할이란 어지간한 연기가 뒷받침하지 않고서는 그 빛을 발하기 힘들다. 조역이 없는 드라마, 조역이 없는 연극을 상상조차할 수 있을까?
에포닌은 ‘레미제라블’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역이다. 거리의 삶을 사는 하숙집 딸 에포닌은 부잣집 청년 마리우스를 짝사랑하지만 차마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채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을 곁에서 지켜만 볼 뿐이다. 프랑스 혁명군에 가담한 마리우스는 코제트에게 편지를 쓴 뒤 에포닌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이때 마리우스의 편지를 품에 품고 밤거리를 쓸쓸히 거닐며 부르는 노래가 바로 ‘나 홀로’란 노래이다.
And now I’m all alone again(지금 또 나 혼자야)/ Nowhere to turn, no one to go to(돌아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이) /Without a home, without a friend,(집도 친구도 없이)/ Without a face to say hello to.(얼굴을 맞대고 안부를 나눌 사람도 없이)/그러나 지금 밤은 다가오고/나는 그가 여기 있는 듯이 느낄 수 있어/가끔 나 홀로 거리를 걷지/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말야… On my own(나의 상상 속에서) 그가 내 옆에 있다고 생각하지/혼자서, 나는 그와 함께 거리를 걷는 거야/ … 그가 없이도 여전히 세상은 흘러갈 테지/내가 결코 맛보지 못한 행복으로 가득찬 이 세상말이야! …/I love him(그를 사랑해)/But only on my own.(그저 나만의 상상 속에서)…
노래가 끝나면 에포닌은 위험을 무릅쓰고 마리우스를 찾아 혁명군 바리케이드에 가다가 결국 총에 맞고 숨을 거두게 된다. 그토록 사랑한 마리우스의 품에 안긴 채… 빅톨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소외되고 외로운… 비참한 사람들이 수없이 등장하지만 에포닌은 그 비참한 사람들 중에서도 비참한 역이다. 즉 조역이면서 잡초… 거리의 삶을 살면서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다 죽는다. 빅톨 위고는 ‘레미제라블’을 쓰면서 인생의 가장 대중적인면… 즉 인류 모두가 느끼는 공통된 고통을 그리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더욱 조역들의 역할이 공감을 주는지 모르지만, 그 중에서도 에포닌의 ‘On my own’(나 홀로)이야말로 여배우들이 주인공 역을 포기하면서까지 부르고 싶어 하는, 뮤지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유명하다.
지금도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 때마다 오디션에 나서는 여배우의 60%이상이 주역(코제트) 보다는 에포닌 역이라고 한다.(1985년 런던에서초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레미제라블’공연은 7월 10일부터 8월26일까지 SF 오피엄 극장에서 열리게 된다.)
삶이란 어차피 나홀로 왔다가 나홀로 사라지는 조역… 누구나 (주역의) 그 찬란한 꿈을 꾸다 사라지는, 에포닌 같은 역은 아닐까…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특히 에포닌이 부르는 ‘On my own’(나홀로)을 모르는 사람은 음악적 무지가 아니라 어쩌면 인생이라는 상처… 그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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