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년 전 이야기이지만 한국에서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불렀다. 가난한 농가에서 소를 팔아 마련한 학생의 등록금으로 세운 건물이라는 뜻이다. 당시에는 한국이 보릿고개를 갓 넘어선 가난했던 시절이라 명문 대학에 합격을 했어도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을 입학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교육열이 높았던 한국의 부모들은 어려웠던 시절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좋으니 자식은 농가의 재산목록 1호인 소를 팔아서라도 대학에 보내야한다는 부모의 한 때문에 우골탑이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대학 졸업시즌을 맞아 학자금 융자를 갚기 위해 등골이 휘는 ‘미국판 우골탑’ 사연을 소개했다. 올해 오하이오주의 한 사립대학을 졸업한 켈시 그리피스라는 여학생의 부모는 의료 보조원과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이다. 현재 12만달러에 달하는 딸의 학자금 융자를 상환하기 위해 엄마는 생명보험까지 취소했다. 켈시도 매달 900달러의 학자금 융자상환을 위한 페이먼트 때문에 두 군데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것은 물론 독립을 미룬 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대학 학비는 지난 1981년 이래 매년 6.4%씩 폭등하고 학자금 융자액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지는데 막상 졸업하고 보니 불경기로 두 명 가운데 한 명만 취직되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이 사회 진출을 하면서 맞게 되는 냉혹한 현실이다. 당장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학자금 융자상환에 발목이 잡혀 결혼을 미루고 출산도 늦출 정도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까지 일어나고 있다. 산더미 같은 학자금 융자 때문에 주택마련의 꿈을 미루면서 주택시장에 유입되어야 할 신규 바이어들이 크게 줄고 있어 부동산 경기회복에도 영향을 줄 정도이다.
한국은 지난해 ‘반값 등록금’을 놓고 여야가 각종 선심정책을 내놓은 가운데 정국이 한창 시끄러웠고, 미국도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공화당 후보가 6월 말 끝나는 정부지원 스태포드 융자의 이자율을 현행 3.4%로 유지하자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할 만큼 학자금은 대선의 향방을 좌우할만한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재원충당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기 위해 대선 후보들은 학자금 융자 이자율을 올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하버드 대학원 재학시절에 학자금을 융자 받아서 공부를 했다. 4만2,753달러를 융자 받았는데, 졸업 후 13년만인 43세가 되었을 때에야 겨우 다 갚았다. 그의 부인 미셸 여사도 비슷한 처지였다. 그들이 1992년 결혼했을 때 부부의 학자금 대출금액은 8만달러가 넘었다. 오바마의 저서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2004년 대출금을 다 상환할 수 있었다.
학자금 융자 때문에 대학 졸업생은 물론 부모들까지 고통분담을 할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학자금 융자는 대학 졸업생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미국인들의 문제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현재 미국인 3,700만명이 학자금 융자가 있는 데 이중 550만명이 40~49세, 630만명이 50대 이상일 정도로 학자금 빚에 허덕이는 중년층 또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융자규모는 1만달러 이하 43.1%, 1만~2만5,000달러 29.2%, 2만5,000~5만달러 16.5%, 5만달러 이상이 11.3%로 나타났다. 은퇴 후 안락한 생활을 기대했던 베이비부머 세대조차도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자녀의 학자금 융자 상환 때문에 은퇴를 미루고 있다.
금년 들어 대학 학자금 융자 규모가 1조달러를 상회하면서 자동차 및 신용카드 대출액을 넘어섰고 대학 졸업생들의 융자액은 평균 2만5,000달러를 기록한 가운데 연체율도 10%를 넘어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미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소비위주의 생활경제인데 학자금 융자상환이 부담스러워 실수요자들이 주택이나 자동차 구입도 미루거나 포기한다면 경제의 회복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지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2008년 금융위기로 연결되는 신호탄이 될 줄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예상하지 못했다. 대학 학자금 융자는 물론 서브프라임과 성격이 다르며 대부분 이자율이 낮은 연방 융자이다. 그러나 파산을 할지라도 평생 지고 가야 하는 부채이다. 이제는 대학 학자금을 융자할 때도 주택이나 자동차를 살 때처럼 규격화된 융자 양식을 기입하고 대출자가 페이먼트를 언제까지 끝내야 하는지 서류작성을 해야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학자금 융자 위기가 또 다른 경제 위기를 유발하는 것은 아닌지 정치권과 중산층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박흥률 부국장 겸 기획취재부장> peterpa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