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민화 목사/ 알마덴 한국학교 교장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 시야를 가려서 스노 체인을 한 차들이 미끄러질 새라 기어가는데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초긴장이지만 철부지 어린 아이들은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야 겨우 강릉의 숙소에 든 우리 가족은 긴 여로에 지쳐 잠이 들었다.
새벽 어두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 보니 남편이 먼저 일어나 베란다에서 눈앞에 펼쳐진 광대한 바다를 보며 파도 소리에 젖어 있었다. 지난 밤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동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서 잠이 깬 듯 한 착각을 하게 했다.
날이 밝자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이 바다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아주 오래 전, 첫 가족 수련회의 아침이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짧은 여행들이 있었지만 가족 수련회라는 명칭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겨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거실에서 둘러 앉아 아침 예배를 드렸다.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며 설교를 들었다. “아빠가 새벽에 베란다에 나와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아빠에게 말씀 하셨단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반드시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고 (창22:17)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윤목사야! 저 바다를 보아라.
네 앞에 저 검은 파도와 같은 시련이 있을 지라도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단다.” 아빠의 눈물어린 설교에 아이들도 따라 울었다.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감동이 어우러지는 아침이었다. 아빠가 만난 하나님! 아빠에게 말씀 하신 하나님을 우리 모두는 믿었다. 설교 후 가족들끼리 둘씩 짝을 지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며 또 울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도 약속 하신 것이 너무 감사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큰 딸은 미국에 와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요즘 유학생들 같이 부모의 경제적 후원이 보장된 유학이 아니었다. 딸은 온 가족이 이민을 올 때 까지 10 년 동안 거의 독학을 하며 외로운 유학생활을 했다.
남편도 오랫동안 그 날 밤바다의 큰 파도와 같은 시련을 겪었다. 예배당을 짓는 건축 공사를 하는 동안 모함과 정신적, 경제적 고통이 심했다. 남편은 6년 동안 큰 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곧 끝날 것 같았던 건축 공사가 길어지면서 가난한 성도들이 어렵게 헌금하는데 비행기 표 끊어서 딸 보러 가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가족 수련회를 하고 싶어도 미국 이모 집에 살고 있는 큰 딸의 빈자리가 너무 쓸쓸해 언젠가 다 함께 식구들이 모이는 날, 첫 가족 수련회 때의 감격을 다시 누리자며 미루고 살았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온 가족이 미국 땅에서 살며 자녀들이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들이 생겨 대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첫 가족 수련회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자녀들은 지금도 아름다운 가족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가능하면 여름 방학에 며칠을 가족 수련회로 정한다. 낮에는 어린 손자 손녀들이 어울려 물놀이를 즐기고 남자들은 운동을 하고 딸들과 며느리도 간만에 뒹굴며 웃음꽃을 피운다. 저녁 식사 후에는 모두 둘러 앉아 예배를 드리며 지나간 일 년 중 개인적으로 제일 감사했었던 일을 한가지 씩 나눈다.
기도 제목도 부탁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막연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말하지 않으면 서로의 문제도 생각도 모르는게 당연하다. 어느 가족이나 가족 여행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꼭 가족 수련회라고 명칭하는 이유는 그 시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더 가까이 느끼고, 서로 격려하며 새 힘을 충전 받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자녀들에게 부탁한다. “훗날 우리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너희끼리라도 이 아름다운 전통은 잘 지켰으면 좋겠다. 또 각 가정별로 가족 수련회 때도 부모가 만난 하나님을 자녀들에게 말해 주어라.” 모세는 가나안 땅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주 하나님의 위엄과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해야 할 사람은, 당신들의 자녀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입니다. 당신들의 자녀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하신 일과 내리신 명령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였습니다.... 당신들은 주님께서 하신 이 위대한 모든 일을 당신들 눈으로 보았습니다.”
(신11:2,7)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것은 아직 어린 우리 자녀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다.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가족의 역사 속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부모는 절대로 잊지 말며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자녀들에게 말해줘야 한다. 훗날 우리 자녀들이 부모가 만난 하나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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